지금처럼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TV로 중계가 되지 않던 시절인 87년. 당시 신인으로서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류중일 삼성 감독은 수상 소감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김재박 선배님, 죄송합니다." 신인으로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도 엄청난 일이지만 류 감독의 소감에서 알 수 있듯 그 전까지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은 김재박(현 한국야구위원회 운영위원)의 독무대였다. 스타가 본 레전드 그 다섯번째는 류 감독이 기억하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유격수 김재박'이다.
'김재박' 하면 올드팬들은 '개구리 번트'부터 떠올린다. 국내 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 1-2로 뒤지고 있던 8회말 1사 3루 찬스 때 일본 투수 니시무라가 바깥쪽 높게 공을 뺐는데 김재박은 타석에서 펄쩍 뛰어 번트를 댔고, 내야안타가 되며 3루주자가 홈인해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류 감독이 기억하고 있는 김 위원의 첫 인상도 바로 번트였다. "김 선배가 한국화장품 시절 대구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중학생(대구중) 때 야구부 전체가 그 경기를 보러 갔는데 김 선배를 보고 세 번 놀랐다"고 추억을 꺼낸 류 감독은 "첫번째가 바로 번트다. 1번타자로 처음 딱 나오더니 바로 기습번트로 세이프가 되더라. 발이 빠르고 재치가 있다는 증거다. 두번째는 수비 때 유격수면서 3-유간 깊숙한 타구를 걷어낸 뒤 노스텝으로 1루에 송구, 타자주자를 잡아낸 것이다. 엄청난 강견에 놀랐다. 세번째는 마지막에 구원투수로 나와서 승리를 마무리한 것이다. 그 다재다능함에 놀랐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첫 인상은 야구소년 류중일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류 감독은 실제 고등학생이 된 뒤 '1번 타자 유격수'와 '마무리 투수'까지 맡는 선수가 됐다. "선배님은 내 어릴 적 롤모델이었다"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이렇듯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부터 김 위원은 공수주가 완벽한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82년말 MBC청룡에 입단하며 프로에 진출했을 당시 나이가 이미 28세. 하지만 85년 타율 3할1푼3리, 50도루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공격을 과시했고 동시에 빼어난 유격수 수비를 선보이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83년부터 86년까지 4년 연속, 그리고 89년에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을 차지하며 레전드로 기억됐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포스트 김재박'으로 불릴 만한 선수는 누가 있을까. 김 위원의 골든글러브 행진을 막은 류 감독 역시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었다. 하지만 현역 중 후계자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류 감독은 "김재박 선배님처럼 공수주를 완벽하게 갖춘 유격수는 아직 없다"고 단언했다. "가장 가깝게는 KIA 이종범이 있고, SK 박진만, 두산 손시헌 등이 있지만 이종범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수비보다 타격에 더 재능을 보였다. 다른 선수들도 한 가지씩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선배님을 따라가기에는 힘들다"는 평가다.
류 감독은 "야구 센스가 가장 좋고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유격수를 맡는다"며 유격수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바로 그런 자리에서,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는 김 위원이야 말로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천재' 야구선수가 아닐까. 노경열 기자 jkdroh@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