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이 비장의 승부수로 내놓은 '4번 최 정 카드'는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추락하는 SK를 막을 수 없었다.
SK가 3위로 내려갔다. 지난해 4월14일 이후 무려 443일 만이다. SK(38승28패)는 1일 목동 넥센전에서 패했다. 한화에 승리한 KIA(41승30패)에게 0.5게임 차로 뒤져 3위가 됐다. 올 시즌 첫 충격의 4연패. 무기력한 패배였다. 찬스에 약했고, 상대의 기회를 쉽게 득점으로 허용했다. 변변한 반격의 기회가 없을 정도로 전혀 SK답지 않은 경기. 그래서 더욱 걱정되는 SK의 미래다.
▶찻잔 속 태풍 '최 정 4번 타자'
최근 SK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타선의 응집력이다. 그 핵심은 중심타선, 특히 4번 타자였다. 올해 6월까지 SK 4번타자의 타율은 2할4푼5리. 8개 팀 중 7위다. 홈런은 4개로 최하위. 32타점으로 넥센과 함께 공동 7위다. 팀의 핵심이 되어야할 4번 타자가 오히려 SK 입장에서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때문에 SK 김성근 감독은 항상 "4번을 칠 선수가 없다. 우리 타선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고 했다.
고심끝에 김 감독이 내놓은 카드는 '4번 최 정'이었다.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두번째 4번 선발 출전하는 최 정은 부담스러울 만했다. 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생소한 4번 타자 자리.
그러나 최 정은 고군분투했다. 2회 선두 타자로 나서 중전안타로 타격감을 조율한 그는 4회 0-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을 만드는 110m 좌월솔로홈런을 날렸다. 최 정의 4번 카드는 합격점. 그러나 이날 철저히 고립됐다. SK 타선이 전혀 최 정에게 득점찬스를 연결하지 못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의 부작용이 오롯이 투영된 타선의 난맥상. 지난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김강민은 이날 1번 타자로 나섰다. 시즌 전 다친 근육부상으로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황. 2번 박재상 역시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단행한 어깨수술로부터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장염증세를 보인 정근우는 3번에 배치됐지만, 역시 전혀 밥상을 차려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대체할 만한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력보강이 없다. 주전들을 대체할 만한 카드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김 감독의 걱정이 그라운드 위에서 태풍처럼 몰아친 하루였다.
▶박경완의 짙은 그림자
타선의 부진, 김광현의 2군행으로 인한 선발 로테이션의 붕괴는 큰 타격이다. 하지만, SK에게 치명적이진 않다.
문제는 아킬레스건 수술로 재활 중인 박경완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약점들이 터졌다는 것이다. 경기 전 김 감독은 "사실 올 시즌 주전포수인 정상호도 양념격의 포수다. 30게임 정도 소화해야 적합한 포수다. 정상호마저 부상으로 이탈해 쓰고 있는 최경철 김정훈 등의 포수는 아직 1군 무대에 설 수 없는 선수"라고 했다. 최경철 김정훈의 기량이 아직 1군에서 활약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의미.
사실 SK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양과 질이 풍부한 중간계투요원들이다. 김 감독의 상대타자에 따른, 상황에 따른 정확한 투수교체 타이밍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승부처에서 SK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연결고리가 박경완이다. 때문에 김 감독은 항상 "박경완은 SK 전력의 절반"이라고 했다.
이날 그의 공백은 여실히 드러났다. 1-1 동점상황에서 4회말 넥센의 공격. 1사 1루 상황에서 유한준은 도루를 감행했다. 스타트가 늦었지만, SK 포수 김정훈의 늦은 송구 타이밍때문에 2루에서 살았다. 선발 매그레인을 구원등판한 고효준은 도망가는 피칭으로 조중근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결국 강정호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4회 2점을 내준 SK는 반격의 실마리도 잡기 전에 5회 또 다시 추가실점을 했다. 1사 2루 볼카운트가 1-2 상황. 장기영은 4구를 노렸고, 그대로 우전 적시타로 연결했다. 다음 타자 유한준의 승부도 너무나 아쉬웠다. 2-1으로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에서 세번째 투수 박희수는 실투성 높은 슬라이더를 던졌고, 유한준은 그대로 타이밍을 맞춰 방망이를 돌렸다. 결국 5회에만 SK는 3점을 허용했고, 1-6으로 스코어는 더욱 벌어졌다. 타격이 좋지 않은 SK로서는 사실상 승부가 끝난 상황. 결국 9회 3점을 따라가긴 했지만, 5대6으로 패했다. 승부처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박경완의 공백이 너무나 짙었다.
SK는 4년 동안 최정상을 달렸다. 올 시즌도 이제 3위로 내려앉았을 뿐이다. 그러나 추락의 체감온도는 너무나 싸늘했다. 그럴만한 명확한 이유들이 있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