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표 극단 시프트'가 다시 등장했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2년만에 다시 좋은 구위를 보여주고 있다. 31일 한화전에서도 1점차에서 세이브를 거뒀다. 시즌 15세이브로 부동의 단독 선두. 15세이브 가운데 10개가 1점차 상황에서 올린 성적이다. 점점 더워지는 계절에 오승환 만큼 떨지 않고 차가운 가슴을 가진 투수도 드물다.
이날 한화전에선 9회에 오승환이 마운드에 오른 상황에서 삼성이 극단적인 수비 포메이션을 보여줬다. 좌익수 배영섭, 중견수 이영욱, 우익수 박한이가 모두 본래 위치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상당히 이동했다. 좌측 펜스 앞쪽은 거의 비워뒀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오승환표 극단 시프트
대개 수비 시프트 앞에는 타자 이름이 붙는다. '배리 본즈 시프트', '이승엽 시프트' 등이다.
극단적으로 잡아당겨치는 왼손 파워히터 본즈가 타석에 서면 내야수들조차 왼쪽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대거 이동한다. 심지어 유격수가 2루의 베이스 뒤쪽에 서있는 경우도 있다. 외야수들도 당연히 오른쪽으로 치우친 수비를 한다.
'오승환 시프트'는 투수가 주가 된 경우라 볼 수 있다. 빠르고 묵직한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오승환이 9회에 등판하면, 기본적으로 타자들의 배트가 공에 밀린다는 가정하에 수비수 위치를 한쪽으로 모는 것이다.
이날 마지막 타자였던 한화 오재필이 오른손타자다. 오승환의 구위에 밀리면 공을 쳐도 타구가 우중간 혹은 우익수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삼성 외야수들이 전원 우측으로 대거 이동했던 것이다.
본래의 좌익수쪽 자리는 텅텅 비어있게 된다. 그쪽으로 칠 수 있으면 치라는, 강한 자신감이다. 결론은 삼진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게 바로 시프트다.
▶오승환 시프트의 과정
이때 1,3루수는 라인선상에 바짝 붙는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근소한 리드를 잡은 경기 막판에는 라인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막기 위해 이렇게 수비한다.
사실 모든 팀이 빠른 공을 가진 투수를 올릴 때 이같은 시프트를 운용한다. 일단 투수와 포수는 바깥쪽 코스로 승부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타자도 물론 바깥쪽 위주 승부가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공에 위력이 있고 제구력이 뒷받침되면 타자는 알면서도 당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대가 대놓고 한쪽을 비워두면, 그쪽으로 치면 된다. 실제로는 어렵기 때문에 텅텅 빈 곳을 보면서도 타자가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승환의 경우엔, 이같은 시프트가 더욱 극단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왼손타자가 들어섰을 경우에는 외야수들의 움직임이 반대가 된다. 삼성 운영팀의 허삼영 전력분석 과장은 "승환이가 좋은 직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특히 파워히터가 아닐 경우 극단적인 시프트가 이뤄진다. 오른손타자가 승환이의 공을 좌익수쪽으로 보내기 위해선 왼쪽 무릎 앞에서 임팩트가 이뤄져야 하는데 승환이의 구위를 감안하면 그게 어렵다. 물론 바깥쪽 승부를 하는 것도 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2년만에 되찾은 시프트
모든 마무리투수가 이같은 시프트를 동반하는 건 절대 아니다. SK 불펜투수 정대현이 마무리로 나올 경우엔 수비 시프트가 극단적이기 어렵다.
허삼영 과장은 "변화구 위주로 던지는 투수들, 정대현 같은 경우엔 커브가 바깥쪽으로 휘어도 방망이 끝에 걸리면 오른손타자가 좌익수쪽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시프트가 극단적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승환 역시 지난 2년간은 이같은 극단적인 시프트의 주인공이 되기 어려웠다. 팔꿈치와 어깨쪽에 통증이 자꾸 재발하면서 포심패스트볼 구위가 처졌기 때문이다. 올해의 오승환은 직구 평균구속이 대략 4㎞ 이상 빨라졌다.
허 과장은 "승환이가 공이 좋은 지 아닌 지를 주변에선 느낄 수 있다. 지난 2년간은 승환이 공을 타자가 치면 외야 펜스 앞까지 잘 날아갔다. 스피드를 떠나 공에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선 시프트를 지금처럼 극단적으로는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오승환표 시프트의 재등장은, 그가 '돌직구'의 위력을 되찾았다는 걸 의미한다. 아프지 않고, 언제든 싱싱한 공을 뿌릴 수 있다는 것. 시프트는 결국 오승환의 건강한 컴백을 상징한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