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모르는 운명 앞에 우리는 모두 장님이다. 오이디푸스는 따라서 비범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다."
그리스 비극의 상징인 오이디푸스가 '평범한 남자'로 재조명된다. 레퍼토리씨어터로 새롭게 탄생한 국립극단이 창단 공연으로 한태숙 연출의 '오이디푸스'를 20일부터 2월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 올린다.
소포클레스 원작의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으로 그간 영웅과 초인의 관점에서 다뤄져왔다. 한 나라의 구원자로 추앙받는 통치자, 신의 반열에 오르려는 인간, 운명에 도전하다 파멸을 맞는 인간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출가 한태숙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그를 재해석한다. 우연히 사람을 죽이게 되고, 왕이 되고,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한 남자일뿐이다. 한태숙 연출은 "우리의 주인공은 퀭한 눈으로 바삐 길을 가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 거리의 남자일수도 있고, 초겨울 하늘을 멀리 날아가는 작은 기러기를 닮은 인간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 평범한 인간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그물에 걸려 파란만장한 곡절을 겪는다.
그렇다면 왜 지금, 오이디푸스를 다시 논하는가. 한태숙 연출은 "역사 이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오이디푸스는 이에 대해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니다'란 대답을 남겼다"고 말했다.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시각에서 오이디푸스는 생생한 현재성을 획득한다. 원작의 고어체 대본을 현실적인 구어체로 풀어냈고,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음악 회화 조각 등 시청각적 모티브를 충분히 활용한다.
'레이디 맥베스', '서안화차','고양이의 늪' 등을 통해 국내의 대표적인 여류 연출가로 자리잡은 한태숙은 극도의 절제와 엄청난 폭발력이 공존하는 무대로 '한태숙 표 연극'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이상직 정동환 박정자 서이숙 등 연극계 중견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오브제 연출 이영란, 음악 원일, 안무 이경은 등 최고의 스태프들이 함께 한다. (02)3279-2214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