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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김연아(26)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국내에선 변변한 훈련장도 없었다.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훈련 시간은 새벽 아니면 늦은 밤이었다. 2007년 아사다의 연간 공식 기업 후원금은 250만달러(약 24억원)였다. 해외 전지 훈련 때는 일등석이 기본이고, 이동할 때도 대형버스를 혼자 타고 다닐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반면 김연아의 생활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안고 캐나다행을 선택했을 때는 민박집에서 기거했다. 세계 대회 출전 때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허리 통증과 꼬리뼈 통증 등 부상에서 자유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스케이트화도 속을 썩혔다. 온라인에선 '김연아 스폰서 찾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였다. 만약 그 때 김연아가 포기했더라면 2010년 밴쿠버올림픽 환희의 금메달은 없었다. 지구촌을 홀린 소름 돋힌 7분 드라마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유 영은 10일 막을 내린 2016년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에서 고등학생 언니인 박소연(19·신목고)과 최다빈(16·수리고) 등을 모두 꺾고 '포스트 김연아'로 자리매김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합계 183.7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보다 더 잘한다."
그러나 10년 전 김연아의 눈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10년이 흘러도 변한 게 없는 아픈 현실이 1800㎡의 새하얀 얼음판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다.
유 영이 김연아의 신화를 재연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다시 가로막고 있다. 10년 전과는 세상이 또 달라졌다. 더 체계적이과 과학적인 육성이 필요하다. '김연아 나라'다운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는 규정으로 유 영은 다시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녀는 우승을 해도 만 13세 미만의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는다는 규정으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다. 사실 유 영이 현재 바라는 것은 국가대표가 아니다. 국가대표는 13세 이후에 하면 된다. 대신 국가대표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작은 소망'은 지울 수 없다.
유 영은 규정이 없던 지난해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태릉선수촌에 입촌, 안정적인 환경에서 훈련하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태릉빙상장에서 지정된 시간에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1~2번씩 태릉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는 롤모델인 김연아와의 만남도 특별했다.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았을 때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대관 시간이 새벽이거나 늦은 밤이다. 그 시간에 맞추다보니 아이가 상당히 힘들어했다. 성장기에 있기 때문에 안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국가대표에 있었을 때는 훈련 시간도 좋았다. 아이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유 영의 어머니 이숙희씨의 이야기다.
제2의 김연아가 탄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 영이 그 희망의 싹을 틔웠다. 미래의 희망에게 김연아의 아픈 전철을 다시 밟게 하는 것은 한국 피겨의 수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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