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넘은' 유 영 살릴 특별법 필요하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6-01-11 18:13


피겨 역대 최연소 우승 신기록을 달성하며 '제2의 김연아' 탄생을 알린 피겨 유망주 유영이 본인이 훈련해 온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유영은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제70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 여자부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관심을 끌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유영의 실력에 "내 초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잘한다" 말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어머니 이숙희 씨와 함께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영.
과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1.11

한국 피겨계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유 영(12·문원초5)이 어려움에 처했다. 아쉬운 규정 때문에 다시 가시밭길로 내몰리게 됐다.

김연아(26)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침체기였다. 많은 선수들이 '포스트 김연아'를 외치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최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간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부진은 여전했다.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소연(19·신목고)이 9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김연아 이후 단 한 명도 180점 고지를 넘지 못했다.

새로운 희망이 떠올랐다. '어린 피들'이다. 10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6년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에서 초등학생 3명이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유 영이다. 유 영은 쇼트와 프리 총합에서 183.7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5월 생으로 만 11세 8개월인 유 영은 김연아가 지난 2003년 이 대회에서 작성한 역대 최연소 우승(만 12세 6개월) 기록을 갈아치웠다. 유 영만이 아니다. 임은수(13·응봉초6)가 총점 175.97점으로 3위, 김예림(13·군포 양정초6)이 173.57점으로 4위에 올랐다. 한국 피겨의 간판인 최다빈(16·수리고)과 박소연은 '초등생 돌풍'에 밀렸다. 최다빈은 177.29점으로 준우승, 박소연은 총점 161.07로 5위에 머물렀다.

유 영은 2005년부터 부모의 사업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생활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금메달 연기에 매료됐다. 동네 빙상장에서 피겨를 시작했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2015년 국가대표 발탁이 기폭제였다. 유 영은 2014년 랭킹전과 2015년 종합선수권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만 10세 7개월의 나이였다. 전 종목을 통틀어 한국 스포츠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5월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안정적인 훈련 환경을 구축했다. 국내 최고의 빙질을 자랑하는 태릉 빙상장에서 지정된 시간에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었다. 박소연 최다빈 김해진 등 언니들과의 훈련도 배울 것이 많았다. 의무팀 등 훈련 지원도 국내 최고였다. 무엇보다도 롤모델인 김연아와의 만남이 컸다. 김연아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태릉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유 영으로서는 김연아와의 만남을 통해 동기 의식을 키웠다. 동시에 많은 조언을 들으며 자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유 영은 더 이상 국가대표의 자격으로 태릉 빙상장을 이용할 수 없다. 유 영은 2015년 랭킹전 주니어 2위, 2016년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 우승을 차지했다. 성적만 보면 국가대표 발탁 1순위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2015년 7월 개정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안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빙상연맹은 만 13세 미만의 선수는 제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ISU가 주최하는 주니어 대회의 출전 기준이 만13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고달픈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종합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태릉선수촌에서 짐을 뺐다. 계속 이용하던 과천빙상장으로 향했다. 대관시간을 잡기가 상당히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이른 새벽인 오전 6시나 늦은 밤인 오후 10시에나 시간을 잡을 수 있다.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체력적인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부상 위험도 있다. 국가대표의 경우 한 번 훈련할 때 4명만 탄다. 빙상장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 빠른 스피드와 긴 비거리가 필요한 점프 훈련도 수월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선수들과 빙상장 공간을 나눠야 한다. 충돌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김해진(19·과천고)은 2010년 훈련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히며 인대를 다쳐 수술을 하기도 했다. 유 영의 경우 최근 기술의 난이도를 높였다. 트리플 악셀이나 쿼드러플 살코를 연습하고 있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선수 본인과 코치 그리고 어머니의 걱정이 크다. 유 영은 11일 과천빙상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태릉에서는 환경이 좋았다. 하지만 과천에서는 사람도 많고 복잡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 영을 지도하는 한성미 코치(36)는 "선수 본인이 새로운 점프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이 크다. 그런데 훈련 장소가 좁아지면 제대로 된 연습이 어렵게 된다. 기술의 스케일이 작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이숙희씨(46)도 "공간만이 아니라 의무팀 등 여러가지 지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 (유)영이가 '마사지가 제일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못하게 돼서 아쉽다"고 걱정했다.

결국 연맹의 '조치'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 '유 영법(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비록 나이 제한에 걸리더라도 종합선수권대회처럼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 우승자는 '국가대표'와 동일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선배들과 겨뤄 이겼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이 시기 좋은 환경에서 훈련한다면 한국 피겨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선수가 탄생할 수 있다. 기존 대표 쿼터를 줄이자는 게 아니다.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연령의 선수에게 기회를 주되 특별케이스로 국가대표 한 자리만 더 늘리자는 것이다. 김연아 이후 13년만에 찾아온 대형 선수 탄생의 기회다. 대의를 위해 융통성이 필요해 보인다.
과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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