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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피겨계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유 영(12·문원초5)이 어려움에 처했다. 아쉬운 규정 때문에 다시 가시밭길로 내몰리게 됐다.
유 영은 2005년부터 부모의 사업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생활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금메달 연기에 매료됐다. 동네 빙상장에서 피겨를 시작했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2015년 국가대표 발탁이 기폭제였다. 유 영은 2014년 랭킹전과 2015년 종합선수권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만 10세 7개월의 나이였다. 전 종목을 통틀어 한국 스포츠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5월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안정적인 훈련 환경을 구축했다. 국내 최고의 빙질을 자랑하는 태릉 빙상장에서 지정된 시간에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었다. 박소연 최다빈 김해진 등 언니들과의 훈련도 배울 것이 많았다. 의무팀 등 훈련 지원도 국내 최고였다. 무엇보다도 롤모델인 김연아와의 만남이 컸다. 김연아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태릉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유 영으로서는 김연아와의 만남을 통해 동기 의식을 키웠다. 동시에 많은 조언을 들으며 자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유 영은 더 이상 국가대표의 자격으로 태릉 빙상장을 이용할 수 없다. 유 영은 2015년 랭킹전 주니어 2위, 2016년 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 우승을 차지했다. 성적만 보면 국가대표 발탁 1순위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2015년 7월 개정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안에 따라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 빙상연맹은 만 13세 미만의 선수는 제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ISU가 주최하는 주니어 대회의 출전 기준이 만13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부상 위험도 있다. 국가대표의 경우 한 번 훈련할 때 4명만 탄다. 빙상장을 넓게 활용할 수 있다. 빠른 스피드와 긴 비거리가 필요한 점프 훈련도 수월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선수들과 빙상장 공간을 나눠야 한다. 충돌위험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김해진(19·과천고)은 2010년 훈련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히며 인대를 다쳐 수술을 하기도 했다. 유 영의 경우 최근 기술의 난이도를 높였다. 트리플 악셀이나 쿼드러플 살코를 연습하고 있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선수 본인과 코치 그리고 어머니의 걱정이 크다. 유 영은 11일 과천빙상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태릉에서는 환경이 좋았다. 하지만 과천에서는 사람도 많고 복잡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 영을 지도하는 한성미 코치(36)는 "선수 본인이 새로운 점프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이 크다. 그런데 훈련 장소가 좁아지면 제대로 된 연습이 어렵게 된다. 기술의 스케일이 작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이숙희씨(46)도 "공간만이 아니라 의무팀 등 여러가지 지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 (유)영이가 '마사지가 제일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못하게 돼서 아쉽다"고 걱정했다.
결국 연맹의 '조치'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 '유 영법(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비록 나이 제한에 걸리더라도 종합선수권대회처럼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 우승자는 '국가대표'와 동일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선배들과 겨뤄 이겼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이 시기 좋은 환경에서 훈련한다면 한국 피겨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선수가 탄생할 수 있다. 기존 대표 쿼터를 줄이자는 게 아니다.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연령의 선수에게 기회를 주되 특별케이스로 국가대표 한 자리만 더 늘리자는 것이다. 김연아 이후 13년만에 찾아온 대형 선수 탄생의 기회다. 대의를 위해 융통성이 필요해 보인다.
과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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