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전여옥 '성공한 부모의 인생'
기사입력 2000년 04월 05일 14시 29분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최근에 결혼을 했다. 그의 부모는 항상 젊은 자신을 능가하는 열정과 도전에 몰두하는 `못말리는 존재'였다. 그는 항상 부모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극복(?)하는 것이 자신의 숙제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갔다와서 자랑스럽게 사진을 공개했다. 그 사진은 보통 신혼여행이 그러하듯 사랑과 행복에 취한 두 남녀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었다. `너무나 행복해요-' 두 남녀의 눈길만 보아도 달콤한 쵸코렛이 연상되는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의 부모 `흐음-좋았구나'라고 말한 뒤 아니나 다를까, `얘들아. 우리 신혼여행사진도 봐라'했다.
그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한마디로 `화끈한 신혼여행사진'이었다. 등산복을 입은 두 젊은 남녀가 주먹을 불끈 쥐다시피하고 떡 버티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둘의 눈은 사진속에도 번쩍 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굳게 다문 입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청년은 너무나 대조적인 자신의 신혼여행사진과 부모 것을 비교하고 또 마음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졌다-이번에도"
그는 내내 유머와 기지를 섞어가며 부모와 자신의 삶을 비교했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끝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부모가 버거우면서도 부모들이 지닌 자유로운 혼이 자신에게도 흐르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했다.
물론 부모님의 인생이 세상의 이치로 따지면 결코 부와 명예가 함께 따라붙은 인생은 결코 아니었다. 실패도 많이 했고 실수도, 엉뚱한 일도 많이 저질렀다. 여느 가정이 다 그러하듯 경제적으로 곤란한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들에게 솔직했다. 집안이 어려울 때 `우리 굶어 죽을 지도 몰라'라고 어린 자식앞 에서 말했다. 또 아버지가 실직했을 때 `이제 살길이 막막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상처주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못말리는 그의 부모는 곧이어 초등학생인 두 어린 자식을 앞에 놓고 `선거유세'를 하듯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는 절대로 물러 설수 없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여러부운！'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쳤다.
그렇게 살았고 이겨내며 컸다. 결혼을 하면서 이제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려는 열망에 불탔다. 어쨌든 부모는 그에게 `버거운 존재'였으니까-그런데 `한장의 신혼여행사진'으로 또 당한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있잖아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담에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이제 우리 나이 60-너무 안주하며 한국이라는 잘 아는 나라에서 살았다. 얘-우리는 캐나다로 가서 살거다"
그는 결혼을 통해 부모를 한번 앞서보려 했는데 카드도 빼기 전에 `당했다'며 웃었다. 그리고 내게 덧붙였다. `우리 엄마, 아버지 참 멋있죠?'라고-그의 부모처럼 `성공한 인생'이 있을까?
[방송인 satuki＠cholli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