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뇌기능개선제 건보급여 축소 소송 제약사 패소…5년 공방 마침표

기사입력 2025-04-08 07:52

[연합뉴스TV 제공]
장기 소송전에 건보재정 멍들고 국민 신뢰 바닥…"소송 남발 제약사 자정 절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뇌 기능 개선제'로 사용되어 온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건강보험 급여 축소를 둘러싸고 제약사들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5년간 이어진 오랜 법정 공방이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은 국민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제약업계의 책임 경영을 촉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8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13일 종근당 등 제약사들이 제기한 건강보험 약제 선별급여 적용 고시 취소 청구 소송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는 1심과 2심에 이은 최종심 판결로,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축소에 대한 정부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결론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미국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분류될 정도로 효능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천문학적인 규모로 판매돼 왔다.

이런 상황은 다른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사용될 수 있는 건강보험 재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 2020년 급여 축소 결정에도 소송으로 '버티기'…국민 혈세 낭비

사건의 발단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 논란이었다. 당시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복지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다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가 2019년 8월 복지부와 건보공단을 직무 유기 이유로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하자 그제야 움직였다.

복지부는 2020년에 이르러서야 치매 진단을 받은 경우에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고, 그 외의 치매 예방(경도 인지장애, 정서불안, 노인성 우울증 등)의 경우에는 본인 부담률을 80%로 대폭 상향하는 선별 급여 결정을 내렸다.

이에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종근당을 비롯한 제약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정부를 상대로 무려 6건의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남발했다.

소송은 대웅바이오 그룹과 종근당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들은 온갖 법적 기술을 동원해 소송으로 시간을 벌고 그 기간 급여 축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2020년부터 2025년 3월까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콜린알포세레이트에 대한 건보 급여는 유지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제약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2023년 한 해에만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건보 처방액은 5천600억 원을 넘어섰고, 2024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판매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능이 불분명한 약품이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건보 재정을 갉아먹은 셈이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축소를 둘러싼 오랜 법정 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권리 구제라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 소송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제약사들의 '꼼수'는 더는 통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특히 종근당 그룹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 온 대웅바이오 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웅바이오 그룹 역시 2022년 1심에서 패소한 후 현재 2심(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조계에서는 사실관계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판결의 영향으로 최종 패소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 임상 재평가 결과 '촉각'…환수 협상도 '발목' 잡을까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약사들의 곤란한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아직 남아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에 대한 임상 재평가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에 따라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시장 퇴출 여부까지 결정될 수 있다.

나아가 만약 임상 재평가에서 효능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제약사들은 이미 건보공단과 합의한 조건부 환수 계약에 따라 막대한 금액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

건보공단은 이미 2021년 8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판매하는 44개 제약사와 임상 재평가 결과 효능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임상시험 기간의 청구 금액 중 일부(평균 20%)를 환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만약 임상 재평가에서 효능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제약사들은 지난 몇 년간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만큼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이 이번 대법원판결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과 건보 재정을 볼모로 삼아 소송을 남발하는 행태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한다.

단기적인 이익에 매몰돼 국민 건강을 외면하는 행태는 결국 제약업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또 윤리 경영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제약사만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shg@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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