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연속 쾌거]'여우' 신태용 감독, '꾀'는 녹슬지 않았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1-27 18:26



갑작스런 변화였다.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도중하차했다. 신태용 A대표팀 코치(46)는 지난해 1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해 호주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일군 후 올림픽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았다. "편안한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의 출사표였다. 그리고 "올림픽 선수들을 잘 모른다. 다만 즐겁고 재미있게 이기는 축구를 하고 싶다.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면서 운동장에서 화합된 모습, 개개인이 희생해 팀이 하나로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27일(한국시각) 결국 고지를 정복했다. 카타르를 3대1로 제압하고 한국 축구에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선물했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은 세계 최초의 대기록이다. 신 감독의 승리였다. 현역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통했던 그는 카타르와의 4강전에서 '진짜 여우'다운 꾀를 발휘했다.

기본 시스템인 중앙 미드필더를 일자로 구성하는 다이아몬드형 4-4-2를 버리고 3-4-3 시스템을 꺼내 들었다. 흔들리는 중앙수비인 송주훈(22·미토 홀리호크) 연제민(23·수원) 사이에 박용우(23·서울)를 배치했다. 박용우는 변칙 전술의 핵이었다. 수세시에는 스리백의 중앙에 포진하고, 공세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해 4-2-3-1 시스템으로 변화를 줬다. 또 발목 부상인 황희찬(20·잘츠부르크)을 조커로 대기시킨 가운데 김 현(23·제주) 류승우(23·레버쿠젠) 권창훈(22·수원)을 스리톱에 세웠다. 미드필더 라인에는 좌우 윙백에 심상민(23·서울)과 이슬찬(23·전남), 중앙 미드필더에는 이창민(22·제주)과 황기욱(20·연세대)이 포진시켰다.

신 감독의 용병술이 적중했다. 후반 3분 류승우가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후반 33분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했다. 후반 35분 황희찬 카드를 가동했고, 그의 발끝에 두 골이 연출됐다. 후반 43분 권창훈의 결승골에 이어 교체투입된 문창진(23·포항)이 쐐기골을 작렬시키며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사실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 1대0으로 승리했지만 내용이 좋지 않아 말이 많았다. 벤치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 감독은 카타르전에서 변화를 선택했고, 신들린 용병술이 빛을 발하며 결승행을 연출했다.

신 감독의 시간은 많지 않았다. 선수 파악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변화를 줬다. 기존의 권창훈 류승우 외에 황희찬을 발굴했고, 박인혁(21·프랑크푸르트) 최경록(21·장트파울리) 지언학(22·알코르콘) 등도 세상에 등장시켰다. 박인혁 최경록 지언학의 경우 소속팀의 차출 거부로 합류가 불발됐지만 인재풀을 넓혔다. K리거 가운데는 박용우를 중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박용우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를 넘나들며 신태용호에 안정감을 선사했다.

이 뿐이 아니다. 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조별리그를 통과한 후에는 "우리는 조별리그에서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8강부터 다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요르단과 8강전의 경기력이 기대이하로 평가되자 카타르전을 앞두고 "카타르와의 경기는 빅매치가 될 것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재밌게 경기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 카타르를 꺾고 결승 진출과 함께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후에는 비로소 "이제 더 이상 보여줄게 없다. 한-일전은 지금까지 했던 것을 더 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후 담담하게 웃었다.


신 감독은 2010년 성남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이끈 후 "난 난 놈이다"라고 해 화제를 일으켰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통해 그의 지도력은 다시 한번 날개를 활짝 폈다. 도하에서 '사막의 여우'로 거듭나며 축구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사실은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대해선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냥 리우행 티켓을 따자고 생각했다. 런던올림픽 때 동메달이나 7회 연속 본선 진출한 과거에 대해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언론에서도 소개가 되니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졌다. 하지만 팀이 흔들릴까봐 부담을 숨겼다. 이제는 리우에 가서 어떤 색깔의 메달을 목표로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신 감독의 눈은 이제 리우를 향해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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