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스토리] '그날의 분위기', 10년 간직한 뭉클 사연?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6-01-14 08:45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영화 '그날의 분위기' 오프닝 크레딧에는 예상 밖의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사도'의 이준익 감독, '사도' 시나리오를 쓴 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 그리고 2009년 고인이 된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다. 20년 가까이 고락을 함께하며 '달마야 놀자', '황산벌', '왕의 남자' 등 다수의 영화를 기획, 제작, 마케팅 했던 '삼총사'다. 이들은 크레딧에 '기획'으로 올라 있다. 여기엔 뭉클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의 분위기'는 유명 카피라이터이자 마케터였던 고 정승혜 대표가 2005년 설립한 영화사 '아침'에서 기획했던 영화다. 부산행 KTX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하룻밤 로맨스를 담았다. '비포 선라이즈' 같은 분위기의 멜로물이었다.

창립작인 '도마뱀'을 마친 후 '그날의 분위기' 제작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투자도 결정되고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김하늘과 강지환이 남녀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그런데 크랭크인 날짜까지 확정된 상황에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 대표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전이된 상황이라 수술도 받지 못했다. 그때가 2006년이었다.

당시 이 영화로 프로듀서 입봉할 예정이던 현 영화사 '문'의 김성철 대표는 이준익 감독, 조철현 대표와 영화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상의했다. 무리하게 제작을 강행해 정 대표에게 부담을 지우지 말고, 남아 있는 얼마간의 시간만이라도 정 대표를 편안하게 해주자는 데 마음이 모아졌다. 배우와 스태프들도 그 뜻을 존중했다. 결국 '그날의 분위기' 제작은 무산됐다. 이후 김하늘과 강지환은 영화 '7급 공무원'에서 재회했다. 그리고 2009년 오랜 투병 끝에 정 대표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잊혀질 뻔했던 프로젝트는 시간이 흘러 김성철 대표가 독립해 영화사를 차리면서 다시 숨결을 얻었다. 2012년 영화사 '문'을 설립한 김 대표는 다시 '그날의 분위기'를 꺼내들었다. 애초 창립작으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여러 사정상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 '톱스타'를 먼저 제작한 후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내용도 수정됐다. 원안은 한 소심한 여자가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 로맨스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내용의 멜로물이었지만, 변화된 시대상과 가치관에 맞게 서로 성향이 다른 두 남녀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었다. 주인공의 직업도 기자와 출판 칼럼니스트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와 화장품 회사 팀장으로 변경됐다. 남녀주인공엔 유연석과 문채원이 캐스팅됐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영화 제목이다. 제목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게 김성철 대표가 내세운 전제조건. 고인이 지은 제목이기 때문이다.

김성철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이 영화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감회에 젖었다. 김 대표는 "이 작품이 지닌 의미도 있고, 잘 될 거라는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선배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다. 내게 영화를 가르쳐주신 분이고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신 분이다. 이 영화가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VIP 시사회가 열린 날 고인을 모신 추모공원에 다녀왔다는 김 대표는 "이준익 감독을 비롯해 그 시절을 함께한 분들을 모신 뒷풀이 자리에서 서로 눈시울을 붉혔다"며 "정승혜 대표도 하늘에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봐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영화는 14일 개봉한다.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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