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주변에 의해 행복해지고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스스로를 가꿔나간다. 모델이자 배우로 20대를 살다 서른 중반에 이른 지금 영화 감독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MC로 음악인으로 부지런히 지평을 넓혀나가는 이영진을 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도전을 했으나 하나 하나의 성취에 연연해하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한 이영진의 인생 철학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톱모델 이영진의 패션인 시즌2 네 번째 주인공은 스타일리스트 채한석이다. 이영진과 채한석은 다른 듯 닮은 구석이 많았다. 누군가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끼가 있었고 그 이전에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부지런한 성격이라는 점이 그랬다. 그래서 두 사람을 돌이켜보면 좁다면 좁은 패션계 안에서도 참으로 다양한 도전을 한 인생들이었다.
그간 채한석의 도전만으로도 인터뷰를 빼곡히 채울 수 있었으나, 흥미 있었던 대목은 그 숱한 도전을 뒤로 하고 요즘 그가 느끼는 새로운 감정들이다. 조금 지친 음성이긴 했으나 여전히 꿈을 말하는 채한석은 정말이지 패션계 영원한 소년 같은 존재다. 어째서 패션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고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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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한석(이하 채): 완전히 이중생활이었죠. 압구정동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돼 VJ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연기도 했죠.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에 출연하면서 방송국을 지나다니다 MBC 이창순 PD님 눈에 띄어 캐스팅이 됐어요.
이-연기는 어땠나요?
채: 6회까지 찍다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했어요. 한 신을 찍기 위해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제게는 고통스럽더라고요.
이-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니까 정말 그럴 법도 했어요. 거기다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스타 마케팅을 하지 않았나요?
채: VJ를 하면서 연예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어떤 쇼가 있으면 그 친구들을 초대하고 홍보하던 것이 곧 스타 마케팅이 돼버렸죠. 이외에도 행사 MC도 많이 봤고 대학교수도 했었어요. 정말 여러가지 일을 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다 팔자였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 꼭 건너가야 했던 강이고, 그 강을 건넜기에 지금의 스타일리스트, 패션을 사랑하는 채한석이 존재하는 거죠.
이- 스타일리스트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채:한 패션 매거진 영어 타이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때 제가 옷 입는 것을 본 편집장님이 스타일리스트를 해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어시 생활을 하지 않고 편집장님이 제 사수가 돼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지금도 그 편집장님과 함께 일을 하는데 저한테는 그분의 칭찬이 부모님의 칭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이-스타일리스트로 했던 첫 작업, 기억 나나요?
채: 퍼 화보였어요. 제대로 된 첫 작업은 다양한 모델들과 한 모피 화보인데 지금 보면 찢어버리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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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재미있다기 보다는 묘했어요. 이상한 음식을 처음 먹어 본 느낌이랄까요.한 눈에 첫사랑에 빠진 느낌도 들었어요. 아니면 마사지를 받아서 너무 아팠지만 집에 가니 시원한 느낌이었던 것도 같고요.
이-옷을 워낙 좋아하는 건 제가 잘 알아요. 그런데 제가 알기 전 어린 시절의 채한석 스타일은 어땠나요?
채: 제가 미국 LA에서 예고를 나왔는데 워낙에 옷 잘 입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어요. 그 중에서도 잘 입는 편이긴 했죠. 교포들 사이에서 유명할 정도로요. 얼마 전에 한고은 씨를 만났는데 '너 어렸을 때 얼마나 멋있었는지 알아?'라고 하시더라고요. 나팔바지, 닥터마틴 부츠에 과한 스타일링이었어요. 외에도 리폼에서 잘라입고 워싱도 해보고 정말 최대한 튀려고 했었죠.
이-그런데 성악을 그렇게 오래 공부했는데 포기한 이유도 궁금해요.
채: 미국에서 다시 한국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오페라 가수나 뮤직 코치가 되고 싶었는데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투자에 비해 벌 수 있는 돈이 적은 거예요. 한 순간에 술을 마시고 포기해버렸죠. 대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50이 되기 전에 가스펠 앨범을 내서 선교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책도 여러 권 출판했는데 또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채: 솔직히 있어요. 자서전을 쓰고 싶은데 제가 이렇게 많은 직업인으로 살면서 생긴 노하우들을 담고 싶어요. 패션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써서 힘들고 꿈이 없는 친구들에게 꿈을 주고 싶어요. 패션하면 흔히들 명품 등으로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색안경을 벗고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이- 자서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스타일리스트가 된지 얼마나 됐나요?
채: 꽤 됐어요. 2002년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그런데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전속 스타일리스트는 안했었죠.
채: 한 적은 있지만 프로젝트성으로 단기간 했었죠. 전 누군가의 스타일리스타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연예인 이름 때문에 먹고 사는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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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깊게 빠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 꿈이에요. 이번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데 과거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라는 방송 때문에 악플을 많이 받았어요. 서론도 과정도 없이 결론만 나온 소위 악마의 편집 때문에 그런 악플을 받게 됐고 상처를 많이 받아 소송까지 생각할 정도였죠. 그 일을 겪으면서 저 자신이 참 나약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특히 요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사람들은 '네가 다른 사람이 30대 40대에 일할 것들을 너무 미리해서 지친 것 아니냐'라고 하세요. 그런 와중에 집중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것들을 발전시키며 살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제 숙제죠.
이- 갑자기 궁금한 것이 있는데 채한석의 10년 뒤는 어떨까요?
채: 10년 뒤에 한국에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스쳐가며 생각드는 건 영화 감독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떡볶이 집 주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솔직히 그 때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루하루는 제가 선택한 삶이고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 끝으로 채한석이 생각하는 패션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채: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죠. 감정을 옷으로도 표현할 수 있어요. 옷 입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의 느낌을 알 수 있어요.오늘 저의 옷으로도 제 기분을 표현했어요. 최근에 산 가장 비싼 재킷과 만원짜리 티셔츠, 그리고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어요. 편안한 것 위주로 입고 하나만 명품으로 믹스매치 한 이유는 스타일리스트로 인터뷰를 하고 있으나 인간 채한석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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