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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초심(初心)'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FA가 계약 첫 시즌 부진한 성적을 내면 많은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몸값이 높을수록 쏟아지는 비판은 가혹하다. 지난해 FA 시장에서 쓴 맛을 본 모 구단 관계자는 "FA 가운데 구단에 만족감을 준 선수는 지금까지 30%가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계약기간 4년을 전부 평가해야겠지만, 첫 시즌부터 잘 하지 못하면 프런트의 부담도 클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까지 역대 FA 계약을 한 150명(해외진출 제외) 가운데 구단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친 선수의 비율이 30%가 안된다는 이야기다. FA '먹튀'라는 표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끊이질 않을까. 우선 '심리적 해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선수들은 FA 자격을 얻기 직전 시즌 무슨 수를 써서든 최선의 성적을 내려고 한다. 부상이 생기더라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하고, 한 경기라도 더 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고 나면 이전과 같이 매경기 전력을 다하기 힘들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다. FA 계약을 맺고 나면 조금이라도 아프면 쉬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일부러 태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투혼'을 발휘하기도 힘든 심리다.
FA 계약을 경험한 모 선수는 "마음이 풀어진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FA 계약은 여태까지 해 온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FA 계약 후 정말 더 잘하는 선수가 있을까 싶다.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그것보다는 선수들은 보통 FA 계약으로 받는 연봉과 성적의 관계를 놓고 부담감을 더 크게 느낀다.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안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신체능력의 하락세도 한 몫한다고 봐야 한다. 보통 FA 자격을 얻는 시점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이번에 FA 계약을 한 박석민(31) 김태균(34) 정우람(31) 손승락(34) 유한준(35)의 나이는 각각 30대 초중반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0대 후반을 기량의 정점, 30대 초반부터 하락세가 시작된다고 본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선수와 5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꺼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30대 투수와의 장기계약은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분석은 국내 선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주 아프고 부상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일수록 롱런을 위해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 등 기초 훈련에 온 힘을 기울인다. '먹튀'라는 비난을 최소화하려면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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