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25년 장기임대, 이제 지자체가 응답하라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1-04 06:21


관중이 가득찬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스포츠조선 DB

광주광역시는 KIA 타이거즈에 홈구장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의 운영권을 25년간 주겠다는 약속을 깨고 '2년 후 재검토' 입장으로 돌아섰다. 애초에 KIA 야구단의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기아챔피언스필드' 사업비 994억원 중 300억원을 부담해 이뤄진 일이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가 '과도한 특혜'라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도 새 구장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개장을 앞두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대구광역시가 삼성그룹이 야구장 총 사업비의 30% 정도인 500억원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25년 동안 경기장 운영권을 줬는데, 일부에서 특혜라며 흔들고 있다. 수십년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기여해온 점은 고려사항이 아닌 듯 하다.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해 말 서울시와 고척스카이돔을 일일대관 형식으로 2년간 사용하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서울시의 요구에 따라 홈구장을 옮기게 된 히어로즈 구단은 새 구장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장기임대와 운영권을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히어로즈 구단은 2년 후 우선협상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양측은 아직까지 이 문제를 매듭지지 못하고 있다.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중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도 서울시에 불만이 많지만 '을' 입장이다보니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NC 다이노스를 유치하면서 새 구장을 공약했던 창원시는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안정적인 경기장 운영권은 프로 스포츠 자생력 확보, 산업화의 기본이다. 오랫동안 지자체가 프로 스포츠를 대기업의 홍보 내지 사회 기여 차원으로 바라보면서 제자리를 맴돌았다.


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구장에서 한국과 쿠바의 2015 서울 슈퍼시리즈가 열렸다. 많은 관중이 고척돔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고척돔=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11.04/
국회가 지난 31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고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경기장 장기 임대의 길을 열었다. 프로야구 구장 등 경기장 장기 임대가 최대 25년까지 가능해졌다. 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한 의미있는 발걸음이다.

개정안은 지자체가 공공체육시설의 효율적 활용과 프로 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유재산(경기장)을 25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사용과 수익을 허가하거나 관리를 위탁할 수 있게 했다. 프로 구단이 최대 25년간 합리적인 비용에 경기장을 장기 위탁 형식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프로 구단의 장기간 구장 임대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2010년 2월 4일 공유재산법 제21조 제항의 사용수익허가 기간에 대한 특례를 정한 스포츠산업진흥법 제16조에 관련 항목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한 조항 때문에 실현이 불가능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그동안 KBO가 프로야구의 산업화를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경기장 관련 사안이었다. 광주, 대구 등 신축구장의 사용주체, 위탁관리 주체도 명확해졌다. 이번 개정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KBO는 오랫동안 프로야구 산업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법적인 제도 마련에 주력해 왔다. 이번 법안 개정도 문체부와 KBO 등 프로 스포츠 종목단체가 긴밀하게 협의해 이뤄낸 성과다.

메이저리그의 대다수 구단이 연고지역 지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구장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단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지역의 일체감 조성, 지자체 위상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개정안이 국내 지자체의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에 따라 지자체가 프로 구단 지원에 더 직접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지자체장이 체육시설을 프로 스포츠단의 연고 경기장으로 사용을 허가하거나 관리를 위탁할 때 프로 구단과 우선해 수의계약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또 관련 법령 때문에 지원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제약이 사라졌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그동안 지자체가 프로팀을 지원하고 싶어도 조례에 걸려 못 할 때가 많았다. 개정안이 지자체의 시민구단 지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과 두산의 2015 KBO 리그 한국시리즈 2차전이 27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렸다. 두산이 6대1로 승리했다. 선수들이 빠져나간 대구구장 그라운드의 모습. 삼성은 올시즌을 끝으로 대구 시민구장을 떠나 새로운 신축구장에서 경기를 치른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10.27/
개정안 제18조 6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공유재산 중 체육시설(민간자본을 유치하여 건설 또는 개보수된 시설을 포함한다)을 프로 스포츠단의 연고 경기장으로 사용수익을 허가하거나 그 관리를 위탁하는 경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20조 및 제27조에도 불구하고 해당 체육시설과 그에 딸린 부대시설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프로스포츠단(민간자본을 유치하여 건설하고 투자자가 해당 시설을 프로스포츠단의 연고 경기장으로 제공하는 경우 민간 투자자를 포함한다)과 우선하여 수의계약할 수 있다. 건설 중인 경우에도 또한 같다'고 했다. 장기간 경기장 운영권을 확보해 부대시설을 활용, 활발하게 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경기장 부대 시설 재임대가 가능해졌고, 지자체가 경기장 수리 또는 보수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개정안이 마술봉처럼 모든 걸 단번에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고 해도 법령 개정에 부합하는 지자체의 조례 손질이 뒤따라야 한다.

한 스포츠 전문가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각 종목 단체가 지자체를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KBO는 '이번 법안이 통과되어 향후 각 구단들의 경기장을 활용한 프로야구 산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시민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경제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도 스포츠산업진흥법의 취지에 맞게 개정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지자체가 응답해야할 차례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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