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무려 1조7천억…전문가도 혀 내두르는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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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불투명해 실제 부담액 파악 어려워…"수익률 성과 연동 확대 필요"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매년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너무 큽니다. 특히 수익률이 낮은 상품에서도 동일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수수료 체계가 너무 복잡하고 불투명해서 실제로 정확히 얼마를 내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더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합니다."
은퇴 후 소중한 노후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퇴직연금에 가입한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불만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는 전문가조차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마치 암호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현행 수수료 체계가 가입자의 눈을 가리고 퇴직연금 사업자(은행·증권·보험사 등 금융사)들의 이익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 퇴직연금 수수료 구조 대체 어떻길래…금융사가 기준·요율 '알아서' 정해
2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등 퇴직연금 관리 감독기관의 통합연금포털을 보면 퇴직연금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사용자(회사)가 일정 금액을 금융기관에 위탁해 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금융사는 이 돈을 굴려서 수익을 내서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다양한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어간다.
문제는 수수료 구조가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한 미로 같다는 것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부과 기준도 제각각이라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수수료는 크게 운용관리 수수료, 자산관리 수수료, 펀드 총비용 등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운용관리 수수료는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방법에 대한 컨설팅 및 설계, 적립금 운용 현황에 대한 기록관리, 가입자 교육 등의 서비스 명목으로 부과된다. 수수료율은 적립금 대비 연간 0.2∼0.6% 수준이다.
자산관리 수수료는 적립금의 보관·관리, 운용지시 이행, 연금을 포함한 급여 지급 등의 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 떼가는 금액으로, 적립금 대비 수수료율은 연간 0.1∼0.5% 수준이다.
펀드 총비용은 펀드 같은 실적배당상품 투자 시 발생하는 각종 보수(운용·판매·수탁·사무관리 보수)와 수수료(선취·후취·매매 중개 수수료) 등 추가 비용이다. 수수료율은 펀드 유형에 따라 연간 0.5∼2.0%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수수료의 부과 기준과 요율을 금융사가 '알아서'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 보험,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별로, 업권별로, 상품별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상품이 유리한지 비교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불필요하게 과다한 수수료가 부과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게다가 누가 수수료를 내야 하는지조차 헷갈린다. 퇴직연금 유형에 따라 수수료 부담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유형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기업형 퇴직연금(IRP) 등으로 나뉜다.
DB형은 회사가 운용책임을 지며 퇴직 시 받을 급여가 사전에 결정된 방식이고, DC형은 근로자 개인이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하며 납입한 금액과 그 운용 수익으로 퇴직급여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IRP는 이직·퇴직 시 받은 퇴직급여를 적립해 운용할 수 있는 계좌를 말한다.
이 중에서 DB형과 DC형, 기업형 IRP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는 사업자(회사)가 부담한다.
이에 반해 개인형 IRP, 개인이 추가로 넣은 돈, 퇴직 후 받는 돈에 대한 수수료는 가입자인 근로자 개인이 짊어진다.
◇ 초기 적립금 적을 땐 부담 크지 않지만, 시간 흐르면 수수료 '눈덩이'
수수료는 적립금 규모에 비례해서 정률로 부과되기에 초기 적립금이 적을 때는 그 부담이 크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적립금이 쌓일수록 수수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입자의 노후 자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존재가 된다.
즉 수수료는 소액처럼 보이지만 30년 이상 장기간 적립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노후 자금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 1%의 수수료 차이가 최종 수령액에서 수천만 원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적립금 2천만 원일 때 연간 수수료는 약 12만8천원 수준이지만, 4∼5년 후 적립금이 1억원으로 늘어나면 연간 수수료는 무려 64만2천원에 달한다. 가만히 앉아서 수십만원씩 수수료로 지출해야 한다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DC형과 개인형 IRP 가입자가 투자하는 실적배당상품, 특히 펀드에는 사업자가 내는 운용·자산관리 수수료 외에도 다양한 명목의 보수와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는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마치 몰래 빠져나가는 세금처럼 투자 원금과 수익에서 자동으로 차감된다. 그래서 펀드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지만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대한 수수료 폭탄까지 떠안아야 한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제공한 '펀드 수수료 내역'을 통해 펀드 수수료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펀드 수수료는 크게 보수와 기타비용보수, 그리고 수수료로 구분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TER(Total Expense Ratio·총보수비용)다.
이는 펀드가 1년 동안 부과하는 총비용을 순자산총액으로 나눈 비율로, 가입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펀드 운용 비용의 핵심이다. TER 안에는 운용보수, 판매보수, 수탁보수, 사무관리보수 등 다양한 명목의 보수가 포함돼 있다.

[금융투자협회 펀드 수수료 내역]
┌──┬───────────────────┬──┬──┬────────┐
│구분│보수         │기타│TER │수수료    │
│ ├────┬────┬──┬──┬───┤비용├──┼─┬─┬─┬──┤
│ │운용 │판매 │수탁│사무│보수 │보수│A+B │선│후│매│합계│
│ │ │ │ │관리│합계(A│(B) │ │취│취│매│ │
│ │ │ │ │ │) │ │ │ │ │·│ │
│ │ │ │ │ │ │ │ │ │ │중│ │
│ │ │ │ │ │ │ │ │ │ │개│ │
│ │ │ │ │ │ │ │ │ │ │수│ │
│ │ │ │ │ │ │ │ │ │ │수│ │
│ │ │ │ │ │ │ │ │ │ │료│ │
│ │ │ │ │ │ │ │ │ │ │율│ │
├──┼────┼────┼──┼──┼───┼──┼──┼─┼─┼─┼──┤
│펀드│0.433 │0.425 │0.03│0.01│0.906 │0.06│0.97│0.│0.│0.│1.23│
│ 평 │ │ │3 │5 │ │6 │2 │10│00│15│9 │
│균(%│ │ │ │ │ │ │ │6 │3 │8 │ │
│) │ │ │ │ │ │ │ │ │ │ │ │
└──┴────┴────┴──┴──┴───┴──┴──┴─┴─┴─┴──┘
※ 퇴직연금 실적배당 상품의 경우, 일반 펀드 상품에 비해 수수료가 1/2~2/3 수준으로 겉으로는 상대적으로 낮음.

이 중에서 특히 펀드를 판매한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져가는 판매보수는 금융회사와 그 직원들의 실적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일 수 있어, 가입자의 이익보다는 판매사의 이익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있어 눈여겨 봐야 한다.
아무튼 겉으로는 일반 펀드 상품에 비해 퇴직연금 실적배당 상품의 수수료가 ½∼⅔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투자하는 퇴직연금 특성상 이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금액으로 불어나 가입자 노후 자산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 "수수료 체계 바꿔야"…운용성과 연동·서비스 질과 내용 따른 차등화
2024년 한 해 동안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수수료로만 벌어들인 수익은 무려 1조6천840억5천500만원이다. 1조7천억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수수료로 챙긴 셈이다.
특히 신한은행(2천116억4천300만원), KB국민은행(2천64억2천300만원), 삼성생명(1천714억6천400만원), 하나은행(1천663억200만원), 우리은행(1천284억1천만원), IBK기업은행(1천269억3천900만원), 미래에셋증권(1천89억9천300만원) 등 상위 7개 금융사의 수수료 수입은 엄청나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4년 말 현재 432조원을 넘었으며, 10년 뒤에는 1천조원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적립금이 늘어나는 만큼 금융사들이 챙기는 수수료 또한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게 확실하다.
실제로 수익률과는 무관하게 금융사가 가입자한테서 떼어가는 수수료는 해마다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수수료 규모는 2018년 8천860억4천800만원, 2019년 9천995억7천800만원, 2020년 1조772억6천400만원, 2021년 1조2천327억원, 2022년 1조3천231억6천100만원, 2023년 1조4천211억8천600만원 등으로 늘었다.
이에 금융사들은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자산운용 전문가, 리스크 관리자, 시스템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한국의 퇴직연금 수수료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절대 높지 않다"면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 등 고객 편의를 위해 지속해서 투자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난마처럼 얽힌 수수료 체계는 가입자가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수수료가 부과되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현행 수수료 체계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며 근본적인 개혁과 당국의 강력한 감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운용 성과와 전혀 상관없이 적립금 규모에 따라 부과되는 현행 시스템은 금융사 간의 수수료 인하 경쟁을 저해하고 결국 가입자 혜택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적립금 규모에 비례해 정률로 부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과 내용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예컨대 가입자 교육 서비스의 경우 적립금 규모가 아닌 교육 횟수나 참여 인원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책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또 실적과 무관한 고정 수수료 부과 방식에서 탈피해 실제 '수익률'에 따른 성과 연동형 수수료 체계를 구축하고 장기 가입자에 대한 수수료 우대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렇게 되면 금융사들이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역할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운용 성과를 위해 노력하고 가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sh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