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손준호(충남 아산)가 중국 슈퍼리그에서의 승부조작 혐의를 시인하는 듯한 발언이 담긴 문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현지 매체와 블로거들은 최근 앞다퉈 '손준호-진징다오 승부조작 관련 판결문'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화면에 뜬 문서를 캡쳐한 사진을 바탕으로 '손준호가 상하이 하이강전을 앞두고 진징다오에게 배당률과 베팅 정보를 문의했고, 20만위안을 베팅했다'며 '손준호는 경기 전 진징다오에게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고 이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엔 손준호의 진술도 적혀 있다. '진징다오가 천천히 뛰며 골을 넣지 말자, 우리는 이기면 안된다고 말했으며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해 큰 고민 없이 동의했다. 평소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뛰었고, 목표대로 승리하지 않았다. 이틀 뒤 진징다오가 내 계좌로 20만위안을 송금했다'는 내용이다. 진징다오 역시 진술에서 '경기 당일 손준호가 배당률에 대해 물어봤으며, 자신도 걸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손준호는 산둥 타이산 소속이던 2023년 5월 상하이 훙차오공항에서 귀국 준비 도중 공안에 연행됐다. 형사 구류로 발이 묶인 그에게 비국가공작원 수뢰죄가 적용됐다. 손준호는 강하게 부인했으나, 10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해 3월이 돼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손준호는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진징다오로부터 20만위안을 받은 건 인정했으나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이후 중국축구협회(CFA)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손준호의 영구 자격 정지를 신청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CFA가 내용을 보강해 재차 FIFA에 자격 정지를 요청했지만, 올 초 다시 기각 결정이 나왔다. FIFA는 'CFA는 선수들의 승부 조작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나 어떤 경기에서 몇 차례 이뤄졌고, 얼마가 오갔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못했다'고 기각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판결문으로 불리는 공개 문서는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 승부조작이 이뤄진 경기와 오간 금액이 구체적으로 특정된 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작성된 날짜나 심리, 판결이 이뤄진 장소 등 판결문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요소는 빠져 있다. 선수들의 진술이 적힌 극히 일부 문서만 공개됐을 뿐, 어떤 판결이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다.
'진술'도 마찬가지. 손준호는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됐으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결백하고 변호사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큰 일이 아니니 변호사는 필요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조사 시작 후 공안에서 말도 안되는 혐의를 제시하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 아내도 체포할 것'이라고 겁을 줬다. 또 아들, 딸 사진을 보여주며 '애들이 무슨 죄가 있나. 엄마까지 여기로 오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나. 빨리 인정하라'고 강요했다"며 "체포 후 가족의 중국 체류 또는 귀국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어 겁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혐의를 인정했다. 이후 변호사와 만날 수 있었지만 '이미 혐의를 인정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손준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서에 적힌 진술 내용은 '강요에 의한 거짓 자백'인 셈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