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속으로 화가 많이 났다."
현대캐피탈 주장 허수봉(26)은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도 마냥 웃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25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대한항공과 3라운드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대0(25-16, 25-19, 25-21)으로 완승했다. 1위 현대캐피탈(승점 43)은 2위 대한항공(승점 35)을 승점 8 차이로 따돌리며 선두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허수봉은 이날 공격이 잘 안 풀리긴 했다. 공격 7득점, 공격성공률 33.33%에 그쳤다. 대신 블로킹 3개, 서브 에이스 3개를 기록하며 상대를 흔드는 데 앞장섰다. 허수봉은 후위 공격 4개를 더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13점을 책임졌다. 팀 내에서는 레오(19득점) 다음으로 많은 득점이었다.
아웃사이드 히터인 허수봉은 이날 아포짓 스파이커로 선발 출전했다. 신펑이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 허수봉이 짐을 나눴다.
허수봉은 "포지션 변경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늘(25일) 공격 타이밍이 조금 안 맞아서 공격에서 부진했던 것 같다. 그래도 팀원들이 있으니까 블로킹이나 수비나 서브에서 팀에 도움이 된다면, 선수들이 잘해 주고 있으니 조금 더 과감하게 치자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현대캐피탈은 경기 내내 서브와 블로킹으로 대한항공을 압도하다 3세트 초반 상대 세터 한선수의 서브를 받지 못하면서 0-6까지 끌려갔다. 한선수의 서브 범실로 겨우 흐름을 끊었는데, 허수봉이 꼽은 이날 가장 분한 순간이었다. 1-6에서 서브를 시작한 허수봉은 6-6 원점으로 되돌리는 큰 공을 세웠다. 서브 에이스는 2개를 기록했지만, 대한항공 리시브가 흔들려 바로 현대캐피탈 코트로 넘어온 공을 레오가 2차례 오픈 공격으로 처리했을 정도로 엄청난 서브를 연달아 때렸다.
허수봉은 "속으로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당장 3세트 초반 분위기를 상대에 내줘서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워낙 서브 감이 좋아서 충분히 우리 흐름이라 생각하면, 그 점수차도 잡아서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점수차를 좁혀놔야 선수들이 덜 부담을 가질 것이라 생각해 과감히 들어갔다"고 밝혔다.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은 허수봉의 책임감을 칭찬했다. 블랑 감독은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3세트 초반에 사이드 아웃이 잘 안되면서 위태로웠는데, 코트에서 보여준 허수봉의 리더십 덕분에 선수들이 정상 궤도로 온 것 같다. 주장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엄지를 들었다.
외국인 선수 레오 역시 "허수봉은 정말 듬직하고 믿을 만한 선수다. 과거 현대캐피탈의 반대편 코트에서 경기했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선수고, 경기를 이기는 데 방해하는 선수 중 하나가 허수봉이었다. 이제는 같이 뛰어서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레오는 2021~202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OK금융그룹에서 뛰다 올 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허수봉은 공격 난조 속에서도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의미와 관련해서는 "공격을 실패한다고 해서 기죽진 않는다. 다른 부분에서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공을 많이 안 때려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승리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선두 현대캐피탈 선수들의 목표는 대한항공의 5년 연손 통합 우승을 저지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까지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V리그 역대 최초 역사를 썼다. 현대캐피탈은 반대편 코트에서 대한항공의 축제를 지켜보며 그동안 아쉬움만 삼켜왔다.
허수봉은 "우리가 챔피언결정전에 가서 매번 (대한항공에) 졌다. 상대는 웃고 우리는 울고, 코트 반대편에서 우승하는 것을 지켜볼 때 선두를 하고 싶으면서도 화도 났다. 우리 선수들 마음에 많이 간직하고 있고, 올해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있는 것 같다"며 지금 흐름이 시즌 끝까지 이어지길 바랐다.
천안=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