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예정된 국제 대회는 없지만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도 늦다.
야구 대표팀은 지난달 대만에서 열린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슈퍼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B조 예선에서 첫 경기 대만에 3대6 충격패를 당한 후 쿠바를 8대4로 꺾었지만, 일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두번째 패배를 당했다. 이후 도미니카공화국 드라마틱한 역전승, 호주전 완승을 거두고도 아시아 라이벌들에 대한 2패에 발목이 잡혀 다음 라운드인 슈퍼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야구 대표팀은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다. 첫 경기 호주에 패하고, 일본에는 완패를 당하면서 WBC 3회 연속 2라운드 진출 실패.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고 대표팀 선수단 역시 고개를 숙이며 귀국했다.
충격 그 자체였던 WBC 이후 KBO와 야구 대표팀은 '세대 교체'라는 명분으로 젊은 대표팀을 꾸려오고 있다. WBC에서는 소속팀 KT 위즈 사령탑과 겸임을 했던 이강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후 전임 감독제를 부활하기로 했다.
당시 아시안게임 사령탑으로 확정돼있었던 류중일 전 LG 트윈스 감독이 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되면서 자연스럽게 임기가 늘었고 이후 프리미어12까지 맡게 됐다.
대표팀 세대 교체 선언 이후 지난해 아시안게임,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그리고 프리미어12까지 20대 중후반 KBO리그 주축 선수들을 핵심으로 대표팀을 꾸려왔다. 세대 교체라는 명분은 분명했지만, 솔직히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공 없는 리빌딩은 없는데 지난 1년간 대표팀이 거둔 성적이 만족스럽다고 보기 어렵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최종 목표인 금메달은 땄지만, 일부 경기에서 졸전이라는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20대 선수들이 주로 출전한 APBC에서는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고, 프리미어12 역시 오히려 대만에도 밀리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했다.
늘 한 수 아래라고 평가했던 대만은 이번 프리미어12에서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세대 교체에 완벽히 성공한 모습이었다. 대만은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일본마저 꺾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다. 프로 리그 수준은 KBO가 훨씬 더 높은데 한국 야구 대표팀이 대만 대표팀에 몇년째 고전한다는 사실은 대표팀이 제대로 된 대비책을 세우고 실전에서 이행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확실한 성과가 필요하다. 더 이상 '세대 교체 중이니 희망을 봤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성적을 내야 한다. KBO리그는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 이어 전세계 세번째 수준의 프로 리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야구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은 2006~2010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의 임기는 프리미어12가 폐막 하면서 끝이 났다. 전임감독제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KBO는 몇몇 후보군에 대해 포괄적으로 보고있으면서도 아직 차기 감독 인선을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 당장 내년에 예정된 굵직한 'A 대표팀' 출전 국제 대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2026년 3월 열릴 WBC는 사실상 내년 1년 내내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었고, 특히 유독 선수들이 정규 시즌 개막 직전인 3월 대회를 힘들어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WBC는 주최인 MLB 사무국이 지난 대회부터 메이저리거의 출전을 적극 권유하면서 대회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도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상당수 출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WBC는 한국 야구가 다시 강해졌다는 모습을 보여줄 최고의 무대다.
그런데 또 실패로 끝난다면 대표팀 세대 교체의 명분도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고 전체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아쉬움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