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허공에 그림이라도 그려놓은 것 같다. 스트라이크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선수다."
마치 FA 계약에 성공한 30대 베테랑의 노련미를 보여주는 표현 같다. 하지만 그 주인공은 프로 4년차, 22세에 불과한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나승엽이다.
2021년 2차 2라운드(전체 11번)으로 화려하게 입문했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국군체육부대(상무)를 통해 지난해 11월 빠르게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2024년. 첫 풀타임 시즌이었다. 나승엽은 타율 3할1푼2리 7홈런 6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80의 눈부신 성적을 냈다.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에도 뽑힐 만큼 대반전의 한해였다.
무엇보다 칼 같은 선구안이 돋보였다. 시즌초 ABS(자동볼판정 시스템) 존에 적응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눈야구'는 빛났다. 5월부터는 프로 무대에 확실히 녹아들며 월간 성적 타율 3할2푼1리 OPS 0.902를 기록했다. 이후 8월 부진과 9월의 만회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흔들림 없이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며 시즌을 마쳤다.
데뷔 첫해의 부진과 군복무로 올해 나승엽의 연봉은 400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1군 엔트리 등록시 최저연봉(6500만원)은 물론, 지난 시즌까지의 기준 연봉(5000만원)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올해의 맹활약은 억대 연봉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롯데는 선수단 연봉 계약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지난 14일부터 휴가에 돌입했다.
내년 1월 2일부터 다시 남은 연봉협상을 이어갈 전망. 나승엽을 비롯해 손호영 윤동희 고승민 황성빈 등 올해 타선을 이끈 핵심 타자들은 모두 억대 연봉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올시즌 나승엽의 출루율은 4할1푼1리, 타율과 9푼9리 차이나는 빛나는 기록이다. 출루율 부문 전체 6위다.
나승엽에 앞서 퓨처스 시절부터 선구안으로 명성을 떨치다 1군 무대에서 진가를 보여준 선수가 있다. LG 트윈스 외야수 홍창기다.
홍창기의 풀타임 첫시즌인 2020년 출루율이 정확히 4할1푼1리였다. 당시 홍창기는 장타력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타율(2할7푼9리)과 무려 1할3푼 이상 차이나는 출루율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해 출루율 5위에 이름을 올린 홍창기는 이후 2021, 2023, 2024년 3번이나 출루율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선수는 포지션이 다르다. 홍창기는 중견수를 보다 우익수로 자리를 옮겼다. 나승엽은 1루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보다 장타 등 타격에 힘을 쏟는 쪽에 집중할 전망. 사직구장의 펜스가 4.8m로 낮아진 만큼, 나승엽은 향후 홈런 수를 늘리며 거포로 성장하고자 한다.
발도 빠른 편이다. 나승엽은 올해 2루타 35개로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렸고, 3루타도 4개나 치며 장타율을 끌어올렸다.
홍창기가 출루에 집중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나승엽 역시 장타력을 충분히 늘릴 수 있다면 출루율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향후 거포로의 성장은 물론, 홍창기의 출루율왕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될지도 관심거리다. 올 한해 리빌딩된 롯데 타선이 내년에도 나승엽의 성장과 시너지 효과를 보여줄수 있을까.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