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 놈만 팬다. 장재현(43) 감독의 뚝심이 마침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오컬트 불모지였던 한국 영화에 새바람을 불어 넣으며 충무로 장르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반전은 없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로 1191만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장재현 감독의 장인 정신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 2월 22일 개봉한 '파묘'(쇼박스·파인타운 프로덕션 제작)의 연출자 장재현 감독은 11월 29일 열린 제45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2015년 영화 '검은 사제들'로 데뷔한 그에겐 9년 만의 첫 청룡영화상 수상으로 의미를 더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오컬트 영화인 '파묘'는 한국 토속신앙에서 빠질 수 없는 음양오행, 풍수지리를 근간으로 한 익숙하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접근 방식으로 오컬트 호러 영화의 신드롬을 양산했다.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수상 무대를 완성한 장재현 감독은 본지와 만나 "청룡영화상이 끝나고 정말 연락을 많이 받았다. 존경하는 선배 류승완 감독은 따로 연락을 해줬는데 유독 잦았던 내 눈물을 보면서 '병원을 가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놀리기도 하더라. 전작 '사바하'(19)를 류 감독의 제작사 외유내강에서 제작해 인연이 깊다. 내게 류 감독은 선배이기 전 스승이다. 전우애가 있고 늘 스승의 날 때 안부 인사를 전할 만큼 특별한 분이다. 유독 류 감독 앞에서 운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류 감독은 '사람들이 내가 괴롭혀서 우는 줄 안다'며 당황했지만 그만큼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니까 그런 게 아닌가 싶다"고 머쓱해했다.
앞서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 시사회 자리에서도 취재진 앞 개봉 소감을 전하는 과정에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섬뜩한 '오컬트 장인'이 흘렸던 여린 눈물에 응원의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장 감독의 눈물은 '사바하' 이후 청룡영화상에서 다시 한번 재현됐다. 수상의 기쁨을 눈물로 만끽했던 장 감독의 모습에 영화 팬들은 '뿌엥재현' '울보깨비(울보 도깨비)' '오컬트 슬픔이' 등 수식어를 붙이며 장 감독의 감동을 함께했다.
이와 관련해 장 감독은 "'뿌엥재현' '울보깨비' '오컬트 슬픔이'까지 갔나? 이번 청룡영화상을 통해 정말 '울보'로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다. 요즘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시상식이 끝나고 혹시나 무대에 올라 실언했을까 봐 걱정돼 딱 한 번 시상식 모니터를 시도했는데 눈물을 닦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눈물이 나더라. 그 당시 내가 느낀 벅참 감동이 또 생각이 나서 모니터를 하면서 울었다"며 웃었다.
이어 "나는 일반 사람과 다른 눈물 포인트가 있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벅찬 순간에 눈물을 흘린다. 광활한 대자연을 보며 벅차 울기도 하고 4년간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공개를 앞둔 그 시점에서도 벅차서 울었다. 그래서 '사바하' 시사회 때도 울었다. 청룡영화상 때는 '파묘' 때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서 더 벅차올랐다. 의도치 않게 사연 있는 감독처럼 남게 돼 민망하다"고 농을 던졌다.
장 감독의 눈물 버튼을 누른 장본인은 객석에 앉아 있던 '파묘'의 주역 김고은이었다. '파묘'에서 무당 이화림으로 흥행을 이끌었던 김고은을 향해 장 감독은 "존경하는 김고은, 당신이 한국 배우여서 너무 기쁘다"며 꾹꾹 눌러온 감사의 마음을 눈물로 전했다.
그는 "김고은과 나는 마치 톰과 제리 같은 사이다. 서로를 약 올리고 놀리면서 친분과 유대를 쌓은 그런 사이다. 서로 약 올리는 케미를 즐기고 그 재미가 꽤 쏠쏠하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보는데 김고은이 나를 너무 축하하는 동시에 장난을 치고 싶어 웃고 있더라. 그 모습에 또 벅차올라 눈물이 맺히더라. 내가 우니까 또 김고은도 울려고 하고 그걸 보고 또 울고. 눈물의 연속이었다. 김고은이 나 때문에 눈물을 참으려 많이 애썼다. 코가 빨개질 정도로 눈물을 참더라"며 "매번 김고은을 볼 때마다 낯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매번 김고은이 '한국 배우'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내가 낳은 딸도 아닌데 그런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지 않나? 정말 '한국 배우'라서 너무 자랑스러운, 진짜 멋있는 배우다. 그래서 수상 소감으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물론 '파묘'의 기둥 풍수사 김상덕을 연기한 최민식에게 보내는 존경도 잊지 않았다. 장 감독은 니코틴을 이유로 올해 청룡영화상에 참석하지 못한 최민식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니코틴 때문에 청룡영화상 땡땡이친 최민식 선배와 다음날 뒤풀이 겸 여행을 떠났다. 민식 선배도 함께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그냥 그 자리를 조금 유쾌하게 만들고 싶어 그런 표현이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나 때문에 민식 선배가 흡연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 또 죄송해졌다. 하필 민식 선배 사진들도 어딘가 담배가 떠오르는 사진들이어서 여러모로 미안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나는 늘 '을(乙)' 마인드를 가지고 작품에 임한다. 누군가는 감독에 대해 한 작품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권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항상 배우들, 스태프에게 빚진 느낌이랄까? 내가 상대를 고생시킨다는 생각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검은 사제들' 때는 멀쩡한 박소담의 머리를 밀어버렸고 '사바하' 때는 청소년인 이재인의 눈썹을 밀게 한 캐릭터를 안겼다. '파묘'에서는 김고은을 작두 타게 만들었다. 그게 내겐 마음 한편 청산하지 못한 빚이다. 그래서 내 작품에 참여한 배우나 스태프가 상을 받을 때마다 빚을 조금씩 청산하는 기분이라 너무 행복하다. 내가 상을 받는 것도 너무 좋지만 내가 받는 것 이상의 기쁨이 있다"고 진심을 전했다.
장 감독과 청룡영화상은 신인 때부터 함께였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로 제37회 청룡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제40회 청룡에서 '사바하'로 감독상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제45회 청룡에서 '파묘'로 감독상 후보로 지명, 수상의 영예까지 차지했다. 청룡 첫 번째 수상으로 잊을 수 없는 '파묘'의 추억과 기억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장 감독은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 세 번 만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바하'로 감독상 후보 초청을 받았던 때가 많이 생각난다. 신인감독상 때 나름 첫 청룡영화상이라 마음먹고 산 정장이 있었는데 '사바하' 때도 너무 기뻐서 그걸 입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사이 나도 모르게 체격이 커졌나 보더라. 바지가 안 맞더라. 청룡영화상 시간은 다가오고 바지라도 새로 사서 갈까 했는데 아내가 '어차피 '기생충'(19, 봉준호 감독) 때문에 당신이 일어설 일이 없을 것 같다'며 구매에 있어 신중하게 내 의견을 묻더라. 아내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그해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감독상,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해였다. 급한 대로 최대한 티가 나지 않는 검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갔는데 너무 우스꽝스러웠나 보더라. 제작자였던 류 감독이 날 보며 '뭐 하는 거야'라며 엄청 놀라더라. 그래서 아내가 해준 이야기를 해주니 바로 '그건 그렇네'라며 웃었던 일화가 있다. 그랬던 내가 올해 '파묘'로 감독상을 받았다"고 웃었다.
함께하는 배우, 스태프를 향한 소박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장 감독의 마음이 모여 '파묘'가 완성됐다. 특히 '파묘'가 특별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불모지와 같았던 'K-오컬트'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렸기 때문. 2015년 '검은 사제들'로 데뷔한 장 감독은 2019년 '사바하', 그리고 올해 '파묘'까지 세 작품 모두 오컬트 장르 하나만 바라본 '오컬트 광인' '오컬트 장인'이다. 이러한 장 감독의 뚝심이 관객의 마음에 제대로 정통했다. '파묘'는 올해 첫 번째 1000만 돌파 흥행작이자 오컬트 영화 사상 최초 1000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장 감독은 "'파묘'는 정말 기묘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궁합이 잘 맞아 이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정말 좋았다. 비단 '파묘'가 1000만 관객에게 사랑을 받아서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지금 영화 만드는 일이 너무 좋고 너무 재미있는 시기인 것 같다"며 "고백하건대 '파묘'로 뜻하지 않은 흥행 감독이 되면서 허영심에 부풀어 있을 때도 잠깐 있었다. '파묘'를 끝낸 직후엔 '또 이렇게 흥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라는 꿈을 꾸며 차기작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흥행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바람으로 시작한 감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흥행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상한 작전을 짜게 되는 내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와, 나 이상해졌구나' '왜 정신을 못 차리니' 자책의 시간을 한 5개월 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음 1000만 흥행작에 대한 기대를 가끔 해주는 분이 있는데 그 욕심을 완전히 버렸다. 관객은 정말 무섭다. 감독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사력을 다해 만드는지 정확히 안다. 일단 내가 신선하게 느껴지고 재미있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흥행은 그다음의 문제다.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지금은 완벽히 정신을 차렸다"고 덧붙였다.
오컬트로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만든 장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힌트도 던졌다. 장 감독은 "장재현의 유니버스는 늘 쉽지 않지만 또 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실제로 내 전작들에 대해 시즌제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이따금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시즌제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캐릭터만으로 풀 수 있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는 후속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파묘'는 진짜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파묘' 후속편에 대해 "'파묘' 어벤져스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일단 무덤이 있어야 하지 않나? 파묘하는 굵직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파묘'는 캐릭터가 너무 좋지만 그걸 이어주는 단단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파묘'의 경우 길게 풀어 시리즈로 만들면 재미있는 시리즈물이 나올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긴 했다"며 "나는 전편과 똑같은 후속편을 만들고 싶진 않다. 1편 보다 더 재미있는 2편을 만들 자신이 없다. 누가 나 대신 해준다면 정말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오컬트 물을 준비 중이다. 그는 "다음 작품은 피를 빨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한 마디로 흡혈귀, 드라큘라 이야기를 준비하는 중이다. 사실 흡혈귀는 정말 종교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다. 기독교 교단 중 동방 정교회를 녹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 한다.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 또 내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빨리 영화를 집중해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는 "확실히 요즘 극장은 불닭볶음면과 같은 것 같다. 영화마다 확고한 색이 있어야 하고 불닭볶음면처럼 맵고 자극적이지만 한번 먹으면 자꾸 당기는 그런 매력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자극에만 집중하면 영화 고유의 맛도 사라진다. 그 균형을 잘 잡으면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파묘' 당시 가장 기분 좋았던 리뷰가 '시간이 순삭됐다'라는 반응이었다. 시간을 잊을 정도로 영화에 몰입했다는 호평이 내겐 그 어떤 말보다 최고의 칭찬이었고 찬사였다. 차기작도 '순삭'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며 "청룡영화상은 우여곡절 많았던 올 한 해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송년회 같은 느낌이다. 송년회 뒤풀이 자리에서 다 같이 모여 '고생했다' 다독여주는 느낌이 확실하게 있다. 분에 넘치게 뒤풀이를 거하게 한 것 같아 잊지 못할 것 같다. 또 재미있는 영화로 관객을 찾아오는 감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