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솔직히 기분 좋은 사람은 없죠. 엔트리 빠졌을 때 그래서 한국시리즈도 안 봤어요. 우승했을 때 분하고 좀 화가 났던 것도 있고…"
KIA 타이거즈 사이드암 투수 임기영(31)은 올해 너무나 아쉽고 분한 시즌을 보냈다. 예비 FA 시즌을 맞이해 지난 겨울 정말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 2023년 시즌 64경기에 등판해 4승, 16홀드, 3세이브, 82이닝,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낸 직후라 자신감도 가득했다.
하지만 개막 직후 왼쪽 옆구리 내복사근 미세손상으로 이탈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일단 마운드에서 공을 제대로 던질 수가 없었고, 하루 빨리 몸을 만들어 마운드에 다시 서려고 서두르다 보니 어딘가 자꾸 탈이 났다. 올 시즌 성적 37경기, 6승2패, 2홀드, 45⅔이닝, 평균자책점 6.31에 그친 이유다.
임기영은 "시작하자마자 다쳤던 게 제일 컸다. 빨리 몸을 만들려고 하다가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고, 또 1군에 왔을 때는 선발도 했다가 불펜도 했다가 이러다 보니까 그런 과정에서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것은 핑계다. 내가 그런 상황에서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못 한 게 제일 크다"라고 덤덤하게 올해를 되돌아봤다.
KBO가 새로 도입한 ABS(자동볼판정시스템)도 임기영에게는 걸림돌이었다. 임기영은 스트라이크존 낮은 곳을 주로 공략하는 선수인데, ABS가 설정한 스트라이크존은 높은 곳을 공략하는 선수들에게 전반적으로 유리한 판정이 나왔다.
임기영은 "확실히 ABS의 영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보면 낮게 던지는 스타일인데, 그런 공을 안 잡아 주다 보니까 상대 타자의 출루가 많았다. 그러면서 더 (내가) 몰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이런 아픔들이 쌓여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탈락했다. KIA는 올해 구단 역대 12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축배를 들었는데, 임기영은 동료들과 같은 KIA 유니폼을 입고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한 마음에 올해 한국시리즈 경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임기영은 "솔직히 엔트리에서 빠졌을 때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경기를 안 봤다. 우승했을 때 좀 분한 것도 많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내년에는 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한국시리즈 탈락의 아픔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전반적으로 최악의 시즌이었지만 임기영은 올해 FA 권리를 행사했다. 부진한 시즌이라 FA 신청을 하기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임기영은 FA 신청 하루 전날 심재학 KIA 단장을 만나 1시간 동안 면담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나는 KIA에 남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심 단장은 "어떻게든 잡겠다"고 임기영을 다독였고 약속대로 지난 21일 FA 계약을 마쳤다. 임기영은 KIA와 계약기간 3년, 계약금 3억원, 연봉 9억원, 옵션 3억원 등 총액 15억원에 사인했다. 금액에서 이견이 있어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 달 조금 넘게 시간이 걸렸지만, 임기영은 스스로 올해 부진을 인정하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선에서 계약했다.
임기영은 KIA와 FA 계약을 마친 것에 기뻐하되 만족하진 않았다.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도 FA 계약을 진행한 구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반드시 잘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스프링캠프에 앞서 조금 일찍 미국으로 떠나 연수를 받기로 한 이유다.
임기영은 "몸은 지금도 계속 만들고 있는데, 내년 1월에 미국에 일찍 가서 트레이닝을 한번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단장님께서 제가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셨다.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되기도 하고, 몸을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임기영과 궁합이 맞지 않았던 ABS 스트라이크존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긍정적이다. KBO 실행위원회는 이달 초 선수단 설문 조사 결과를 반영해 ABS 스트라이크존을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존 크기의 변화 없이 상단, 하단 모두 0.6% 포인트 하향 조정해 전체가 아래로 이동하는 형태가 된다.
임기영은 "그래도 올해보다는 (변화된 ABS 스트라이크존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데 또 막상 해봐야 알 것 같다. 얼마나 낮아졌는지 직접 봐야 하고, 캠프 때부터 적응을 해야 한다. 예전에 해왔던 것을 조금 버리면서 색다르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의욕을 보였다.
내년에는 한국시리즈 2연패에 도전하는 KIA에 반드시 힘을 싣겠다고 다짐했다. 임기영은 "올 시즌에는 너무 안 좋은 모습을 팬들께 보여드렸다. 내년에는 작년과 같은 투구를 보여 드리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광주=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