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사실 내가 안들어가는게 좋은 거다."
선수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을 직시한 베테랑의 솔직한 멘트였다. 그럼에도 코트에서 뛰고 싶은 마음 역시 컸다.
현대캐피탈 전광인은 한때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였다. 2018 ̄2019시즌 챔프전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MVP에도 오르며 아웃사이드 히터의 대세가 됐던 그였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점점 힘든 시기가 왔고, 어느새 현대캐피탈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번시즌 현대캐피탈은 기존의 허수봉과 새로 온 레오, 신펑으로 삼각편대를 꾸리고 있다. 전광인의 자리는 없다. 전광인은 이들의 리시브가 불안할 때 투입되는 교체 멤버로 나서고 있다.
전광인은 1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홈경기서도 교체로 들어가 팀에 귀중한 역전승에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교체로 들어가던 전광인은 1-2로 뒤진 4세트에서는 신펑을 대신해 선발 출전했고, 5세트 역시 코트를 누볐다. 서브에이스 1개 포함 6득점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71.4%에 이르렀다. 전광인이 들어가며 흔들리던 리시브가 안정됐고, 2,3세트를 졌던 현대캐피탈은 4,5세트를 이기고 3대2의 역전승을 할 수 있었다.
경기 후 현대캐피탈의 필립 블랑 감독은 "신펑에서 해결이 잘 안됐고, 레오의 리시브도 좋지 않아 전광인을 들어오게 했다. 전광인의 경험을 기대했고 잘됐다"면서 "신펑은 더 강한 서브와 높은 블로킹을 가지고 있는 아포짓 스파이커다. 전광인은 리시브가 좋은 안정감있는 아웃사이드 히터다. 신펑이 들어갈 때와 전광인이 들어갈 때의 시스템이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전광인은 "4세트에 선발로 들어가는데 너무 긴장이 되더라"며 의외의 발언을 했다. 최근에 경기에 주전으로 나가지 못했어도 많은 경험을 가진 그가 긴장을 하다니. 전광인은 "띄엄띄엄 출전했고, 최근엔 못들어간 경기도 있어서 오랜만에 들어가니 긴장이 됐다. 그래서 가볍게 하려고 했다. 의욕적으로 하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하려고 했고, 잘 풀린 것 같다"라고 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전광인은 "사실 내가 안들어가는게 좋은 거다. 그만큼 잘되고 있다는 거니까"라며 팀애 자신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말했다. 이어 "나에겐 그게 한편으론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며 "(팀을 위해선) 내가 안들어가고 싶다가도 선수는 들어가고 싶으니까…"라고 했다.
전광인은 "내가 들어가면 리시브나 이런 부분에서 다른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한다"며 "블로킹 코스나 수비 자리에 대해 감독님께서 얘기를 해주시는데 큰 틀에서는 리시브 부담을 줄여주고 디펜스에서 올려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신펑이 아무래도 그쪽에선 아쉬움이 있으니까 내가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제 세월을 느낀다. "뒤에서 보고 있으면 내가 연습할 때 잔소리를 많이 했던 어린 선수들이 어느새 어느 자리에 들어가도 채울 수 있는 선수가 됐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는 전광인은 "내 생각에 우리 팀은 이제 성장하는 팀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시즌 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천안=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