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강연서 작품세계 회고…"세계는 왜 폭력적이고 동시에 아름다운가"
여덟살에 쓴 시 공개…차기작, 세상 떠난 언니 이야기
(스톡홀름=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자신이 여덟 살 때 썼던 시의 내용을 공개하며 한국어로 그의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그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상자 안에서 일기장들과 함께 여덟 편의 시를 묶어 '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종이들을 발견했다며 그 안에 적힌 시 두 연을 공개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은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 안에 살면서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고 회고했다. 그는 인간의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새 작품으로 나아갔다.
그는 채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와 그에게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채식주의자'(2007년)를 쓸 때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러한 물음은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폭력으로 이뤄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2010)와 '희랍어 시간'(2011)이 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의 질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년이 온다'(2014)를 집필하면서 정점에 달한다.
한강은 '광주 사진첩'이라는 책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됐다"고 털어놨다.
소설마다 이어진 질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강은 "2∼3년 전부터는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강은 이날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돌아보며 개별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와 감정도 털어놨다. 아울러 집필 중인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도 설명했다.
그는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인간이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선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집필 중인 작품을 소개했다.
한강은 또 "완성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라며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라고 덧붙였다.
강연 말미에 한강은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한 한강의 이날 강연은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새벽 1시부터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노벨위원회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으며, 900명 이상이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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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