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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과 엄격의 대명사' 김정은, 그의 대기록이 더욱 위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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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선수도 아닌데…"

아니다. 대단한 선수 맞다. 여자농구의 '살아 있는 전설'인 하나은행 김정은 얘기다.

김정은은 지난 2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3~2024 여자 프로농구' 삼성생명전에서 8득점을 올리며 통산 8147점을 기록, 정선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가지고 있던 8140점을 제치고 WKBL 역사상 최다 득점 1위에 올랐다.

전 경기까지 대기록 달성에 단 2점이 모자랐던 김정은은 경기 시작 직후 25초만에 특유의 점퍼 슛으로 가볍게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결코 가벼웠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전체 1순위로 신세계(하나은행의 전신팀)에 지명된 김정은은 그 해 겨울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벌써 19년째 코트를 누비고 있다. 1987년생으로 올해로 37세, 당연히 여자 프로농구 현역 최고령이자 팀의 막내인 2006년생 정현, 하지윤과는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이모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매 경기 30분 가까이 소화를 해낼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종아리와 무릎 부상 등으로 두 시즌 정도에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긴 했지만, 데뷔 이후 단 한번도 시즌을 통째로 쉬지 않는 꾸준함으로 2000~8000점까지 구간별 최연소 득점 기록은 죄다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대부분의 기록이 늘 중하위권에 머물던 하나은행에서 올렸다는 점이다. 팀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굴하지 않고 림을 향해 던지고 또 던졌다는 뜻이다. 우승에 대한 갈망으로 2017~2018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으로 이적, 그 해에 챔피언전 MVP에 오르며 우승반지를 처음으로 끼었던 김정은은 지난 2023~2024시즌을 앞두고 친정팀으로 복귀, 후배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는 동시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코트에서의 진지함과 열정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대기록의 달성 순간에 잠시 기뻐했을 뿐, 김정은은 이날 팀이 패하면서 웃음으로 엔딩을 하지 못했다. 경기 후 김정은은 "좋아할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이렇게 경기를 하면 아직도 괴롭다, 축하를 해주러 오신 팬분들께도 너무 죄송하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이런 여전한 '엄격함'이 지금의 김정은을 만든 것은 확실하다. 김정은은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데,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000점을 달성한 지난 2020년 1월 19일 삼성생명전 이후 8000점까지 올 때까지 가장 힘들었다는 김정은은 "영혼까지 모두 걸다시피 해서 올린 기록이다. 부상 이슈가 많았는데 정말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도 많았고, 좌절도 많았지만 이렇게 기록을 세워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10여년 전 목표로 삼았던 챔프전 우승과 MVP 달성은 이미 이룬 상태에서 이제 '1만점'이라는 하나만 남은 셈이다. 김정은은 "1만점 달성은 아니어도 이제 괜찮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친정팀에 돌아와서 대기록 달성도 의미가 큰데, WKBL에서 기록 달성 후 이벤트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대단한 선수도 아닌데"라며 또 스스로를 낮췄다. 이런 기쁜 순간에도 여전히 겸손한 김정은이기에 1만점 달성은 결코 불가능한 목표는 아닐 것이다. 아니 그 보다 더 의미있는 것이 있다. 이제부터 올리는 점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신기록이자 WKBL의 역사이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