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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50년] ④ "안일함이 위기 자초…1년 내 성과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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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출신 인사·전문가들 "위기는 곧 기회, 조직문화 변화 절실"
사장단 인사에 기대감 확산…고동진 "전영현 부회장에 힘 실어준 것"

(서울=연합뉴스) 한지은 강태우 기자 = 지난해 반도체 업계를 덮쳤던 매서운 '한파'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그 후 나타난 인공지능(AI) 붐으로 반도체 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시대 필수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경쟁사보다 한 발 뒤처지면서 회사를 둘러싼 위기론이 끊이질 않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출신 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새로운 리더십, 조직문화 변화 등을 바탕으로 심기일전(心機一轉)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삼성이 30년 넘게 잘해오다가 HBM에서 좀 삐끗했는데, 잘하고 있는 회사(SK하이닉스)는 더 잘하고, 삼성전자는 이를 빨리 캐치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조건 1년 안에 성과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모바일 부문(옛 IM부문) 대표이사를 지낸 고 의원은 1984년 삼성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 유럽 연구소장, 기술전략팀장(부사장), 개발실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으며 '갤럭시 성공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고 의원은 특히 지난주 단행된 사장단 인사로 삼성전자의 '위기 탈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봤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전 부회장은 메모리사업부장과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도 겸임한다.
고 의원은 "AI 시대에서 (HBM과 같은) 메모리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됐다"며 "이번 인사는 전 부회장이 예전에 메모리 사업부장을 했었으니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전 부회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사장 시절 메모리사업부장이던 전 부회장과 3년 이상 호흡을 맞춰왔다"며 "전 부회장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고 바라보는 폭도 넓을 뿐 아니라 일할 때 굉장히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미 6∼7개월 전부터 전 부회장이 (DS부문장으로) 투입돼 다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빠르면 6개월, 늦어도 1년 안에는 뭔가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출신인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반도체교육원장)는 삼성에게 닥친 위기가 안일함에서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위기를 타개할 저력 역시 삼성 내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31년간 시스템반도체 개발,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개발, 갤럭시 제품 개발에 참여했으며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위위원,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 교수는 "현재 삼성전자 안에는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패배 의식이 만연한데, HBM 실책은 그동안 잘하던 것만 하려는 안주와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러나 실패가 오히려 보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책임소재를 따지고 묻는 것에서 벗어나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에 있었던, 똘똘 뭉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다시 살려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업 측면에서는 메모리에서는 확실한 1위를, 파운드리에서는 확고한 2위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파운드리 사업은 사실 서비스 마인드가 필수인데, 삼성은 그간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메모리에서 승승장구하던 사람들을 파운드리로 보내왔다"며 "이번 인사에서 시장 보는 눈이 넓은 한진만 사장을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등용한 것은 꽤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어 "대만 TSMC를 앞서겠다는 것은 큰 의욕"이라며 "반도체가 초미세공정만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삼성이 잘하는 7나노, 14나노를 더 탄탄하게 만드는 전략 등을 통해 확고한 2위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조직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며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면서 노조 리스크가 불거지는 등 내부에서 문제가 곪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삼성전자 특유의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삼무원'(삼성전자에 공무원을 합친 은어)이라는 관료주의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서지용 교수는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거칠게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 안에서 '왕따'나 다름없고, 위기가 구체적인 상황에서 멀리 볼 필요가 없다"며 "당장 필요한 것은 장기 투자보다 산업 내에서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연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TSMC가 어떻게 미국 기업과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 강력한 연결고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분석해야 한다"며 "이 같은 분석은 자유로운 조직문화에서 치열하게 토론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burni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