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대식 기자]인도네시아 축구에 매직을 일으킨 신태용 감독은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인도네시아는 19일(한국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별리그 C조 6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이번 승리로 인도네시아는 월드컵 3차 예선 역사적 첫 승리와 함께 C조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신태용 감독은 위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를 이끌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3차 예선 진출에 성공한 뒤에 많은 찬사를 받았다. 3차 예선의 흐름도 좋았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두 수는 앞서있는 호주와 사우디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인도네시아의 저력을 보여줬다.
호주와 사우디에 패배하지 않으면서 10월에 있을 바레인과 중국전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커졌다. 바레인과 중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면 어지러운 C조에서 2위권 진입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레인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막판에 실점해 승리를 목전해서 놓쳤다. 4연패를 달리던 중국에도 승점 3점을 헌납하면서 인도네시아는 조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11월 A매치 첫 경기였던 일본전에서도 0대4 참사를 당하자 신태용 감독을 의심하는 시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태용 OUT이라는 해시태크가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을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다.
자칫 위기로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은 사우디전 승리로 악화된 여론을 180도 뒤집었다. 사우디 역시 로베르트 만치니 감독과 이별한 뒤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거론됐던 에르베 르나르 감독을 재선임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던 찰나였다.
여전히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밀리는 인도네시아였지만 사우디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승리를 이끈 선봉장은 마르셀리노 퍼디난이었다.
마르셀리노는 전반 31분 라그나르 오랏망운이 치고 달리면서 만들어낸 역습에 가담했다. 페널티박스 좋은 위치에 자리잡은 뒤 오랏망운이 패스를 넘겨주자 침착한 마무리로 사우디의 골망을 갈랐다. 인도네시아는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고, 사우디는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인도네시아는 후반 11분 다시 간격을 벌렸다. 이번에도 역습이었다. 캘빈 베르동크가 역습에 나섰다. 사우디 수비진은 우왕좌왕하면서 마르셀리노를 놓쳤다. 마르셀리노의 첫 번째 슈팅은 육탄 수비에 막혔지만 마르셀리노가 세컨드볼을 잘 처리하면서 인도네시아에 승기를 안겼다.
인도네시아는 후반 44분 저스틴 허브너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지만 막판까지 수비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역사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사우디 상대로 첫 승이자 인도네시아 축구 역사상 월드컵 3차 예선 첫 승리였다.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그는 "선수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오늘만큼은 선수들이 원팀이 되어서 잘해줬다. 모든 걸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처음에 우리가 찬스를 넣었으면 훨씬 더 많은 골을 기록하면서 쉽게 경기를 가져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선수들이 잘했다. 고맙다"며 선수들의 활약을 칭찬했다.
신태용 감독은 사우디를 상대로 전술 변화를 시도한 게 적절하게 먹혀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3-4-3 포메이션을 사용하다가 상대가 압박이 좋아서 우리가 3-5-2 전형으로 바꾼 게 잘 맞았다. 중원에 있는 3명의 선수가 완벽하게 해줬다. 퍼디난이 2골을 넣어서 잘한 것보다도 감독이 주문한 걸 100% 해줬다"고 분석했다. 지난 일본전이 끝난 후 신태용 감독은 경질설이 나돌았다. 그런 배경에는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장의 발언이 있었다. 토히르 회장은 "신태용 감독의 자리는 계약 종료까지 안전하겠지만 일본전 평가는 이뤄져야 한다. 신태용 감독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평소와는 다른 발언을 남겼다. 토히르 회장이 신태용 감독을 따로 만났다는 소식도 나오면서 경질설이 빠르게 퍼졌다.
이번 승리로 신태용 감독 경질설은 사그라들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토히르 회장의 발언을 두고 "회장님이 노파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포인트를 잘 찍어서 이야기를 했다고 본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어 "그런 이야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이겼다기보다는 선수들끼리도 미팅하고, 무언가 해보자는 단합된 모습이 중요했다"며 토히르 회장의 발언이 선수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태용 감독은 또한 "지난 3일 동안 코칭스태프가 분석하고, 이틀 동안 계속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선수들이 강하게 압박하면서, 수비적일 때는 상대 뒷공간을 적극적으로 노려야 한다고 말한 게 잘 먹혔다. 선수들이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믿고 따라준 게 완벽하게 이뤄졌다"며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조화가 사우디전 승리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승리로 3위가 된 인도네시아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2위인 호주가 조 최하위였던 바레인과 비기면서 승점 7점밖에 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와는 겨우 1점 차이다. 인도네시아는 내년 3월에 호주와 바레인을 만나고, 6월에는 일본과 중국을 상대한다. 3월에 있을 호주전에서 승리를 가져온다면 2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일단 신태용 감독은 "오늘 경기를 승리하면서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가 3~4위를 목표로 잡고 있었다. 홈에서 2경기가 남았기에 충분히 목표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경기가 앞으로 선수들에게 잘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로 작용할 것이다"며 승리에 지나치게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