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안중에도 없는걸까.
토트넘이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중징계에 대한 항소를 고려 중이다. 19일(한국시각) 영국 텔레그라프는 '토트넘이 손흥민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벤탄쿠르에 7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린 잉글랜드 축구협회 결정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토트넘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권리가 있으며, 실제 항소를 고려 중'이라며 '구단은 징계애 대해 아직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혹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라프는 '벤탄쿠르가 받은 징계 기간과 과정에 대해 여러 구단이 놀랐다. 인종차별적 행위에 대해 다른 선수들에게 내린 처벌과 다른다고 생각한다. 선수의 사과와 손흥민의 지지도 불리하게 작용됐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FA는는 지난 18일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한 혐의로 벤탄쿠르에게 국내 대회 7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FA는 성명을 통해 "벤탄쿠르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독립 규제위원회는 이것이 증거가 있다고 판단하고 심리 후 그에게 징계를 부과했다"라고 발표했다. 벤탄쿠르는 출전 정지와 함께 10만파운드(약 1억8000만원)의 벌금 징계도 받았다.
시작은 지난해 6월 벤탄쿠르의 나쁜 농담에서 비롯됐다. 벤탄쿠르는 최근 우루과이의 방송 프로그램 포르 라 카미세타에 출연했다. 코파아메리카 출전을 앞둔 벤탄쿠르는 이 방송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했다. 논란이 된 것은 이 부분이다. 인터뷰 진행자가 "네 유니폼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한국인 유니폼을 가져다 줄 수 있나?"고 물어보자 벤탄쿠르는 "쏘니?"라고 되물었다. 이어 진행자가 "세계챔피언의 것도 좋다"고 말하자 벤탄쿠르는 "아니면 쏘니 사촌 거는 어떤가. 어차피 걔네 다 똑같이 생겼잖아"라고 받아쳤다. '동양인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벤탄쿠르의 발언을 들은 팬들은 곧바로 비난에 나섰다. 팬들은 "큰 일이다", "쏘니는 가장 훌륭한 축구 선수인데, 벤탄쿠르가 농담이라고 해도 화가 날 것", "내일 한국인이 깨어나면 벤탄쿠르 SNS는 난리가 날 것"이라고 반응했다. 논란이 커지자 벤탄쿠르는 곧바로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쏘니!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할게. 내가 한 말은 나쁜 농담이었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절대 무시하거나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어'라며 손흥민 계정을 태그해 사과했다.
손흥민과 벤탄쿠르는 절친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손흥민이 지난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안와 골절을 입었을때 위로해준 것도 벤탄쿠르였다. 손흥민 역시 지난 해 10월 장기 부상에서 돌아와 벤탄쿠르가 복귀전을 치르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손흥민은 "벤탄쿠르는 날 미소 짓게 하는 믿을 수 없는 선수"라며 "우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난 벤탄쿠르가 오늘 그라운드에 나타났을 때 흥분했다"고 한 바 있다. 그런 벤탄쿠르 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진정성에 의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벤탄쿠르는 해당 사과문에서 '쏘니'를 Sonny가 아닌 Sony로 적었다. Sony는 일본 기업 이름이다. 게다가 벤탄쿠르는 이를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아닌 '스토리'에 올렸다. 게시물은 자신이 직접 삭제해야만 지워지지만 스토리는 단 24시간만 유지된다. 진심을 다한 사과문인지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영국 언론들도 심각성을 조명했다. '미러'는 '벤탄쿠르가 생방송에서 끔찍한 농담을 하고 손흥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그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 충격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발언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디애슬레틱'은 '벤탄쿠르가 토트넘 팀 동료 손흥민에게 나쁜 취향의 농담을 했다'고 지적했다. 데일리메일은 '엽기적인 발언'이라고 조명했다. 영국 풋볼 런던에서 토트넘 전담 기자로 활동하는 알레스디어 골드 기자 역시 "벤탄쿠르가 한 말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손흥민이 동료들에게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다"며 분개했다.
가뜩이나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지난해 5월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아웃되던 중 팰리스 원정석에서 인종차별 행위를 당했다. 웨스트햄 팬들은 "불법복제 DVD를 파는가"라는 발언을 했고, 인종차별적 댓글도 달았다. 첼시 팬들로부터 눈을 찢는 인종차별적 행위를 당했다. 스카이스포츠 해설가는 손흥민이 "무술을 하고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과거 인종차별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 사실을 모두가 안다. 인종차별에 대해선 따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축구를 한다. 어떤 나라, 어떤 인종인지는 중요치 않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런 손흥민이 캡틴으로 있는 토트넘, 동료가 한 인종차별적 발언인만큼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 아쉬운 것은 앞서 손흥민이 인종차별적 행위를 당할때마다 토트넘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으며 팬들의 댓글을 지운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상황을 더 키우고 있다. 팬심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토트넘의 게시글마다 인종차별 반대 댓글이 달리고 있지만, 토트넘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토트넘 사정에 능통한 유력 기자 오키프는 토트넘 팬이 벤탄쿠르의 인종차별에 대해 토트넘이 왜 반응이 없냐는 질문에 "모두가 휴가를 떠나서 그렇다"며 "그들이 돌아와도 그들이 발표할지는 의문이다"고 답했다. 골드 기자는 19일 자신의 유튜브에서 "벤탄쿠르의 인터뷰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겠지만 인종차별적인 문장을 형성한다. 벤탄쿠르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끔찍한 농담이었다. 우루과이 내에서는 이것이 괜찮고, 문화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데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끔찍한 방식이다"고 말했다.
팬들은 "이 팀은 아시아 팬들을 오로지 돈으로만 본다. 존중이 없다", "우리의 주장을 존중해라. 댓글을 삭제하지마라",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났으면 좋겠다. 토트넘은 손흥민을 데리고 있을 자격이 없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구단 공식 SNS에 올라오고 있는 벤탄쿠르 사건 관련 댓글을 삭제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결국 손흥민이 직접 나섰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벤탄쿠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실수했고, 이를 알고 사과했다'며 '그는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말을 할 의도가 없었다. 우린 형제이고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일을 이겨낼 것이고, 단합할 것이며, 프리시즌에 함께 뭉쳐 하나가 되어 우리 클럽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제서야 토트넘도 나섰다. 손흥민이 공개 행보을 하자 처음으로 구단의 입장을 밝혔다. 토트넘은 '벤탄쿠르의 인터뷰 영상과 선수의 공개 사과 이후 구단은 이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성, 평등, 포용이라는 목표에 따라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한 추가 교육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토트넘은 또 '우리는 주장 손흥민이 이번 사건에 대해 선을 긋고, 팀이 다가오는 새 시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는 다양한 글로벌 팬층과 선수단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종료의 차별도 우리 구단, 우리 경기, 더 넓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지난 하츠와의 프리시즌 경기 후 '벤탄쿠르와 인종차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지, 혹은 나눌 예정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코파 아메리카에 대해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쏘니다. 손흥민이 하는 대로 따르고 있다. 그와 관련해서는 처리 중이고, 뒤에 추가 조치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니라) 이번 일로 영향을 받은 손흥민의 기분과 손흥민의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손흥민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9월 벤탄쿠르의 징계 논의가 본격화됐다. 풋볼런던은 '벤탄쿠르가 FA로부터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풋볼런던은 '벤탄쿠르가 E3 가중 위반(AGGRAVATED BREACHES)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다'고 전했다. FA 규정에 따르면 E3.1 규정에는 '관계자는 항상 경기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며 '부적절하거나 경기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위, 폭력적인 행동, 심각한 반칙, 위협, 욕설, 외설, 모욕적인 언행 또는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E3.2 규정에는 'E3.1 규정 위반은 가중 위반'이라며 '여기엔 인종, 피부색, 국적, 종교, 신념,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 이 중 하나 이상을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한 것이 포함된다'고 나와 있다.
벤탄쿠르의 경우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명백히 E3 규정을 위반했다. 풋볼런던은 '벤탄쿠르는 그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있지만 FA에 문의한 결과, E3를 처음 위반한 개인의 '가중 위반'에 따라 6~12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권고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벤탄쿠르는 기소를 수락하거나 거부할 기회가 있다. 기소를 수락하면 위원회는 제재를 결정할 것'이라며 '만약 기소를 거부하면 위원회는 기소를 유지 혹은 기각 여부를 결정하고, 기소가 유지된다면 제재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손흥민은 벤탄쿠르를 계속해서 감쌌다. 그는 카라바흐와의 유로파리그 사전 기자회견에서 "FA와 함께 절차가 진행 중이고 여기에 대해 많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난 로드리고를 정말 좋아한다. 반복해서 말하면 정말 그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정말 좋은 추억이 있었다. 우리는 그가 합류할 때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는 휴가인데 곧바로 사과했다. 난 집에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내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진심으로 느꼈을 것들을 말했다"며 "벤탄쿠르가 프리시즌 훈련에 돌아왔을 때 그는 정말 미안해했고 공식적으로, 개인적으로 사과할 때 거의 울었다. 그가 정말 미안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벤탄쿠르의 징계는 결국 현실이 됐다. 벤탄쿠르는 토트넘의 핵심 선수다. 올 시즌 리그 10경기 중 7차례 선발 출전했다. 토트넘은 올 시즌 11위까지 추락한 상황인데, 벤탄쿠르 없이 빡빡한 일정을 치러야 한다. 다가올 24일 열릴 맨시티 원정 경기부터 시작해 풀럼, 본머스, 첼시, 사우샘프턴, 맨유(리그컵), 리버풀전까지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일정들이 줄줄이 있는만큼, 토트넘 입장에서는 분명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토트넘의 태도는 아쉽다. 가뜩이나 이번 사건 과정에서 손흥민을 염두에 두지 않는 태도로 비판을 받았던 토트넘이다. 최근에는 손흥민 재계약에서도 구단에 헌신한 레전드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역시 손흥민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토트넘은 손흥민을 안중에 두고는 있는 걸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