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일러 업체 귀뚜라미가 하청업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최근에는 특허분쟁 여파로 주력 모델의 생산판매가 중단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 고발에 과징금 9억…약소기업 기술 넘겨 부당 이득 의혹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귀뚜라미와 귀뚜라미홀딩스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에 고발했다. 귀뚜라미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9억5400만원에 달한다. 귀뚜라미는 보일러, 냉·난방기 등을 제조하는 사업자이고, 귀뚜라미홀딩스는 귀뚜라미그룹의 지주회사이자 귀뚜라미의 구매 업무를 위탁 수행하고 있는 사업자다.
공정위는 귀뚜라미와 귀뚜라미홀딩스가 수급사업자에게 납품받고 있던 부품의 구매 단가를 절감하기 위해 해당 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부당하게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이와 동일한 제품을 개발할 것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수급 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유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합의된 사용 범위를 벗어나 자신의 구매 단가 절감 등 경영상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위법하다는 설명이다.
귀뚜라미홀딩스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보일러 제조에 필요한 센서를 납품하던 수급 사업자 A사의 기술자료 32건을 중국 소재의 경쟁업체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기술자료를 제공받은 중국 업체는 일부 센서 개발에 성공했고, 2021년부터는 이를 귀뚜라미에 납품하기도 했다.
또한 귀뚜라미는 2022년 5월에 전동기를 납품하던 수급 사업자 B사의 기술자료 2건도 해당 수급 사업자의 국내 경쟁업체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해당 경쟁업체도 전동기 개발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귀뚜라미와 귀뚜라미홀딩스가 수급 사업자들에게 기술자료 46건을 요구하면서 요구 목적 등이 기재된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행위도 적발해 함께 조치했다. 귀뚜라미와 귀뚜라미홀딩스는 2012년 7월부터 2022년 4월까지 A사에게 센서 관련 기술자료 40건, B사에게 전동기 관련 기술자료 6건을 요구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의 경우 단가 절감을 위해 수급 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부당하게 제공하는 행위 등을 적발·제재한 것"이라며 "업계의 유사 법 위반행위를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열교환기 기술 무단 도용"…특허 분쟁 여파 주요 제품 판매 중지
귀뚜라미는 현재 경쟁사인 경동나비엔과의 특허권 분쟁도 진행 중이다. 앞서 경동나비엔이 "귀뚜라미가 자사 열교환기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며 귀뚜라미의 일부 제품 생산·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에 귀뚜라미가 특허무효심판제기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경동나비엔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60부는 지난달 경동나비엔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귀뚜라미의 자사 콘덴싱 보일러의 핵심 부품인 열교환기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지난해 12월 경동나비엔이 신청을 제기한 지 11개월 만이다. 열교환기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해 난방수를 데우는 역할을 하는 콘덴싱 보일러의 핵심 부품이다.
이에 따라 귀뚜라미는 자사 제품 '거꾸로 에코 콘덴싱(모델명 L11, S11, E11)'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보일러의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을 앞두고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면서 귀뚜라미의 실적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귀뚜라미의 주력인 순간식 모델들의 판매가 중단된 것으로 올겨울 매출 하락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뚜라미는 경동나비엔의 특허가 출원 이전부터 범용적으로 쓰이고 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허심판원은 지난 9월 경동나비엔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특허 4건에 대해 2건은 무효, 1건은 부분 무효 결정을 내렸다.
다만 특허심판원이 남은 1건의 특허를 인정하면서 이를 근거로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귀뚜라미는 특허심판원이 인정한 1건의 특허에 대해 심결취소소송을 청구한 상태다.강우진 기자 kwj1222@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