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이 중동 강호 사우디아라비아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월드컵 본선 진출 희망을 살렸다.
신태용호는 19일 오후 9시(한국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C조 6차전에서 전반 32분과 후반 12분 '에이스' 마르셀리노의 연속골에 힘입어 2대0 승리했다.
신태용 감독의 지도력을 앞세워 역대 처음으로 월드컵 최종예선(3차예선)에 진출해 최근 2연패를 포함해 5경기 연속 무승(3무2패)에 그치며 한계를 드러냈던 인도네시아는 월드컵 최종예선 역사상 첫 승을 통해 월드컵 본선 희망을 키웠다.
1승3무2패 승점 6점을 기록한 인도네시아는 같은시각 중국이 홈에서 일본에 1대3으로 패하면서 최하위인 6위에서 3위로 무려 3계단 점프했다. 4경기 연속 무승에 그친 3위 사우디(6점)와는 승점, 득실차(-3)에서 동률을 이루고, 다득점에서 3골(인도네시아 6골, 사우디 3골) 앞섰다. 20일 새벽에 열릴 5위 바레인(5점)과 2위 호주(6점)의 결과에 따라 3위 유지 여부가 결정날 전망.
이번 월드컵 3차예선에선 3개조 1~2위 총 6개팀이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쥐고, 조 3~4위 6개팀은 패자부활전 성격인 4차 예선을 진행한다. 반환점을 돈 이번 월드컵 3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의 현실적인 목표는 최소 4위를 해 4차 예선을 치르는 것이다. 사우디전 승리로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신태용 매직'이 통했다.
축구변방 인도네시아의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신 감독은 중국전에 이어 일본전에도 연패를 하며 현지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일부 언론과 팬은 신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에릭 토히로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장은 일본전 0대4 대패 이후 성난 팬심을 달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신 감독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드러냈고, 신 감독은 다시 한번 기대에 부응했다.
인도네시아는 귀화 선수 위주로 스쿼드를 꾸렸다. 라그나르 오랏망운, 라파엘 스트라위크 투톱을 가동했다. 마르셀리노, 톰 하예, 이바르 제너가 스리 미들을 구축하고, 샌디 월시, 리츠키 리도, 제이 이제스, 저스틴 후브너, 캘빈 베르동크가 파이브백을 구성했다. 마르텐 파에스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지난달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후보였던 에르베 르나르 감독을 새롭게 선임한 사우디는 파라스 알 브리칸을 원톱으로 세우고, 모하메드 알 카타니, 모하메드 카노, 나세르 알 도사리, 마르완 알 사하피, 파이잘 알 감디로 미드필드진을 구축했다. 사우드 압둘하미드, 하산 탐바크티, 알리 알불라이히, 야시르 알 샤라니가 포백을 만들고, 아흐메드 알 카사르가 골문을 지켰다.
신 감독의 전술 컨셉은 명확했다. 파이브백을 중심으로 한 수비진으로 사우디의 공격을 걸어잠근 뒤 빠른 역습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겠다는 복안. 전반 8분, 인도네시아의 스트라위크가 문전에서 순식간에 골키퍼에 일대일 상황을 맞아 슛을 시도했지만, 선방에 막히며 득점이 무산됐다. 19분 알 사하히의 슛은 골대 위로 떴고, 21분 알 카타니의 슛도 무위에 그쳤다.
전반 24분, 인도네시아의 첫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후브너가 자기 진영 페널티 박스 좌측에서 공중볼을 걷어내려다 상대 선수 얼굴을 발로 터치했다. 주심은 퇴장 여부를 살피기 위해 직접 비디오판독시스템(VAR) 온필드 리뷰를 진행했다. 한참동안 영상을 보고 돌아온 주심은 후브너에게 경고를 내밀었다. 인도네시아로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장면.
위기 뒤에 어김없이 기회가 찾아왔다. 32분, 선제골이 터졌다. 오랏망운이 상대 좌측면을 돌파한 뒤 문전에 있는 마르셀리노에게 컷백을 연결했다. 공을 잡은 마르셀리노의 영리한 속임 동작으로 마크맨의 시선을 따돌린 뒤 골문 우측 구석을 향한 오른발 슛으로 선제골을 갈랐다.
전반 추가시간 4분, 공격에 가담한 베르동크의 그림같은 논스톱 왼발 발리 슈팅은 옆그물을 때렸다. 2분 뒤, 문전 앞 사우디의 알 브리칸의 슛은 인도네시아 수비수 몸에 맞고 골라인 밖으로 나갔다. 전반은 인도네시아가 1-0으로 앞선 채 마무리했다.
르나르 감독은 하프타임에 알 카타니를 빼고 압둘라 알 함단을 투입하며 빠르게 변화를 꾀했다. 후반 6분 카노의 헤더는 골대를 벗어났다. 6분 뒤, 인도네시아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역습 상황. 마르셀리노의 패스를 받은 베르동크가 문전에서 넘어지며 재차 마르셀리노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박스 안에서 공을 잡은 마르셀리노의 첫번째 슈팅은 수비에 맞고 흘러나왔다. 재차 공을 잡은 마르셀리노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달려나온 골키퍼의 몸을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칩샷으로 추가골을 만들었다. 마르셀리노는 득점 후 트랙 위에 있는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관중석을 바라보는 '역대급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르나르 감독은 다급해졌지만, 후반이 되도록 겔로라 붕카르노 스타디움의 잔디 상태와 인도네시아식 압박에 애를 먹었다. 선수 교체도 소용없었다. 신 감독은 지친 선수를 적절하게 교체하며 2골 리드를 유지했다. 후반 44분 후브너가 누적경고로 퇴장당하는 변수에도 2대0 스코어를 끝까지 지켰다. 추가시간 6분 하산 탐바크티의 헤더는 골대를 살짝 벗어나고, 카노의 중거리 슛은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사우디는 4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기며 본선 직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