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대식 기자]로드리고 벤탄쿠르가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강력한 징계를 받았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18일(이하 한국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벤탄쿠르의 징계 내용을 발표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우리는 벤탄쿠르가 미디어 인터뷰에서 규칙 E3를 위반해 7경기 출전 정지와 10만 파운드(약 1억 7,6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벤탄쿠르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에 잉글랜드축구협회 규칙 E3 중 가중처벌을 받게 됐다. 이번 징계는 잉글랜드 대회에만 적용된다.
토트넘으로서는 심각한 전력 이탈이다. 이번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벤탄쿠르는 이브 비수마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주전으로 도약했다. 벤탄쿠르는 앞으로 토트넘 전력에서 오랫동안 이탈하게 된다.
징계가 곧바로 적용되기 때문에 벤탄쿠르는 맨체스터 시티(원정) 경기부터 풀럼(홈), 본머스(원정), 첼시(홈), 사우샘프턴(원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홈), 리버풀(홈) 경기까지 뛸 수 없다. 벤탄쿠르는 다음달 27일에 예정된 노팅엄 포레스트 원정 경기부터 국내 대회를 소화할 수 있다. 그전까지 진행되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경기는 출전이 가능하다. 벤탄쿠르가 국내 대회를 뛰지 못하는 동안 비수마가 다친다면 토트넘으로서는 비상이 걸린다. 아치 그레이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지만 아직 토트넘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뛰어본 경험이 부족하다. 2006년생의 어린 선수가 팀의 중심을 맡기엔 책임감이 많이 뒤따른다. 벤탄쿠르가 돌아오기 전까지 비수마가 다치지 않고 경기를 뛰길 빌어야 하는 토트넘이 됐다.
벤탄쿠르의 인종차별 사건은 지난 6월 터졌다. 한 우루과이 방송에 출연한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벤탄쿠르에게 한국 선수 유니폼을 가져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이때 벤탄쿠르는 "손흥민 유니폼을 원하는 것인가?"라고 되물으면서 "아니면 손흥민 사촌의 유니폼은 괜찮은가. 어차피 걔네는 다 똑같이 생겼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벤탄쿠르가 정말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아시아인들의 생김새가 모두 똑같다는 의미는 분명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다. 해당 영상이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 유포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논란이 커지자 벤탄쿠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에 나섰다. 개인 SNS를 통해서 손흥민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손흥민,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한다. 정말 나쁜 농담이었을 뿐이다.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한다. 너를 존중하지 않거나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사랑해 손흥민"이라고 올렸지만 사과문에 성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토트넘의 늦은 대응도 논란을 더 키우는 꼴이 됐다. 토트넘은 공식 SNS에서 벤탄쿠르 인종차별 관련 댓글을 지운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일주일이 지난 후에 토트넘이 공식 대응을 진행했지만 구단의 처리는 아쉬웠다. 벤탄쿠르의 징계는 따로 없고, 선수단 전원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내용뿐이었다.일단 가장 큰 피해자인 손흥민이 벤탄쿠르를 용서하겠다고 직접 개인 SNS에 올렸다. "벤탄쿠르는 실수했고, 그는 실수를 알고 있었고, 사과했다. 벤탄쿠르가 누군가를 공격적으로 말하려고 했던 의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형제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적었다.
이대로 상황이 종료될 것처럼 보였지만 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 벤탄쿠르를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하면서 징계가 유력해졌다. 지난 9월 잉글랜드축구협회는 "벤탄쿠르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욕설이나 모욕적인 말을 사용하거나 불명예를 안겼다는 의혹이 있다. 명시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국적, 인종 혹은 민족적인 기원에 대한 언급이 담겨있었기에 위반 혐의가 있다"며 기소 이유를 발표했다.벤탄쿠르가 인종차별적인 혐의로 징계 위기에 놓이자 손흥민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냈다. 그는 "프리시즌을 위해 훈련장으로 돌아왔을 때 벤탄쿠르는 정말로 미안해하며 울 뻔했다. 벤탄쿠르는 공개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사과했다. 사과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실수를 하고, 그로부터 배운다. 우리는 동료로서, 친구로서, 형제로서 나아가고 있다. 난 벤탄쿠르를 사랑한다"며 벤탄쿠르 편을 들어줬다.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 역시 "우리는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걸 벤탄쿠르처럼 실수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벤탄쿠르에게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벤탄쿠르에게 강력한 징계를 내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인종차별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징계를 피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결국 벤탄쿠르 스스로 부주의한 발언을 남긴 게 화근이었다. 손흥민이 인종차별로 인해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토트넘 동료라면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용납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미 잉글랜드축구협회는 베르나르두 실바가 맨체스터 시티 동료인 벵자민 멘디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농담을 한 것으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