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많이 좋아졌다. 매년 비시즌에 가장 공들이는 선수다. 육서영이 언니들보다 잘해야 우리도 한계단 올라설 수 있다."
여자배구에 몸 담은지 만 3년째.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IBK기업은행이 첫 봄 배구를 조준하고 있다.
V리그 여자부 판도는 지난 시즌과 비슷하다. 흥국생명-현대건설 2강 구도에 정관장이 도전장을 던지는 모양새. 도로공사와 GS칼텍스는 예상대로 나란히 저공비행중이고, 다크호스로 평가되던 페퍼저축은행은 '초보 감독' 장소연의 독려에도 외인 교체 등 현실의 벽에 직면했다.
이 와중에 흐름을 흔드는 팀이 있다. 기업은행이다. 최근 4연승을 질주하며 올시즌 6승2패(승점 16점)로 정관장(승점 10점)을 제치고 3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4경기는 GS칼텍스와 페퍼저축은행 상대로만 따낸 승리다. 지난 1라운드 때는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에겐 졌지만, 나머지 경기를 다 이겼다.
배구계 일각에선 '이길 팀 이기고, 질 팀한테 졌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차가운 승부의 세계, '이겨야 할 경기를 잡는다'는 건 프로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페퍼저축은행 상대로는 깔끔하게 2경기 연속 셧아웃을 따냈고, 주포 실바가 빠진 최하위 GS칼텍스와의 2경기에선 흔들렸지만 승리는 놓치지 않았다.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한 정관장전은 가장 귀중한 승리였다.
김호철 감독이 계획한 외국인 선수 조합이 딱 맞아떨어졌다. '득점 1위' 외국인 선수 빅토리아가 최전방에서 팀을 이끌고, 아시아쿼터 세터 천신통이 안정되게 경기를 조율한다.
경기당 평균 30득점이 넘는 빅토리아의 맹활약은 토종 선수들의 견고한 뒷받침 위에 빛난다. 황민경-육서영-김채원의 기업은행 리시브라인은 세트당 디그 1위(23개) 수비 성공 1위(29.2개) 리시브 효율 3위(32.1%)를 기록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트당 세트 2위(13.81개)의 준수한 2단 연결까지 이뤄지고 있다. 2021년 12월 부임 이래 김호철 감독이 다잡아온 수비진의 힘이다.
황민경이야 워낙 검증된 베테랑이라고 본다면 늘 공격력 대비 아쉬운 수비를 보여줬던 육서영의 성장이 인상적이다.
육서영에겐 터닝포인트가 되어야만 하는 시즌이다. 부동의 주전 표승주가 정관장으로 이적했고, FA 이소영은 아직 부상에서 회복중인 단계. 육서영이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 이소영-황민경이 모두 수비에서 강점이 있는 선수인 만큼, 1m80 큰 키에 좋은 서브와 블로킹을 뚫어내는 파워를 지닌 육서영의 활약이 올해 기업은행의 성적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였다. 미들블로커 최정민과 함께 팀의 미래이기도 하다.
벌써 프로 6년차, 흥국생명서 활약하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배구인 2세로서 매시즌 기대주로 꼽혔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 기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육서영은 17일 화성 페퍼저축은행전에서 블로킹 2개 포함 13득점(공격성공률 35.5%)으로 빅토리아(30득점)에 이어 팀내 득점 2위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당 평균 11.8득점(14위)도 인상적이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수비에서의 발전이다. 세트당 수비 성공(7.258개)은 도로공사 임명옥, 흥국생명 신연경 등 리베로들을 제치고 당당히 3위에 올라있다. 48.4%에 달하는 리시브 효율에 세트당 디그 4개(리그 10위)까지 갖췄다.
김호철 감독은 2021년 기업은행의 불미스러운 하극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영입된 '특급소방수'다. 그동안 팀의 안정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계약 첫해이자 FA로 이소영과 이주아를 영입한 최소 봄배구 이상의 성적을 내야하는 시즌이다.
지난 시즌 세대교체 여부를 묻자 김호철 감독은 "실력이 못 미치는 선수를 기용할 수 없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그 선수를 쓰지도 않는다. 지금은 언니들이 배구를 더 잘한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서 실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답했다.
올해도 노장의 배구관은 그대로다. 육서영이 껍질을 깨고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김호철 감독이 "이제 많이 써야하는 선수가 됐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이유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