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와, 오늘 진짜 지단이었어요."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주장의 칭찬에 부끄러운 듯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14일(한국시각) 3대1 완승을 거둔 쿠웨이트전의 히어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황태자' 황인범(페예노르트)이었다.
최고라는 말로도 부족한 활약이었다. 황인범은 전반 10분 칼날 같은 크로스로 오세훈(마치다)의 선제골을 도왔다. 황인범의 이 환상적인 크로스에 쿠웨이트의 밀집 수비가 한번에 무너졌다. 결국 9분 뒤에는 추가골의 기점 역할을 했다. 중원에서 연계 플레이를 통해 이재성(마인츠)에게 볼을 건넸고, 오세훈과 2대1 패스 후 이재성이 찔러준 볼을 잡은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손흥민이 이를 성공시키며 한국은 2-0 리드를 잡았다.
2-1로 살얼음판 같은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 28분에는 쐐기포를 만들어냈다. 손흥민 대산 교체로 들어온 배준호(스토크시티)가 왼쪽 측면을 파고들자, 지체없는 전진 패스를 보냈다. 배준호가 이어 받아 상대 수비를 따돌린 뒤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배준호의 마무리도 돋보였지만, 황인범의 기가 막힌 스루패스가 빛났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부터 황태자로 불렸던 황인범은 홍명보호에서도 전술의 핵으로 활약 중이다. 중원에서 박용우(알 아인)와 함께 빌드업과 수비 보호를 맡는다. 계속해서 주전으로 뛰었지만, 냉정히 지난 9월 A매치 활약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전개의 상당 부분은 이강인(파리생제르맹)에게 넘어갔다. 페예노르트 이적 후 수준 높은 네덜란드 무대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황인범은 한단계 도약에 성공했다. 9월 구단 이달의 선수와 10월 리그 이달의 팀에 선정됐다.
A매치 소집 전까지 리그와 유럽챔피언스리그 포함, 매주 2경기 씩 총 7경기를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A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황인범은 차원이 다른 활약을 펼쳤다. 눈길을 끈 것은 움직임이었다. 황인범은 후방에서 볼을 전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측면 침투를 통해 기회를 창출해냈다. 전반 막판 골대를 맞고 나온 이재성의 헤더를 만든 것은 왼쪽으로 돌아들어가 크로스를 올린 황인범의 플레이였다.
황인범의 존재는 대표팀 공격 전술 자체를 바꿨다. 황인범이 확실하게 중원을 장악하자, 2선이 더욱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재성의 역할이 바뀌었다. 연계와 밸런스에 집중하던 이재성은 황인범에 그 역할을 맡기고, 대신 보다 마무리에 집중했다. 직접 득점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지능적인 플레이로 좌우 측면 공격수들의 파괴력을 높여줬다. 전방에 숫자를 늘리게 된 홍명보호는 보다 많은 슈팅 기회를 만들어냈다.
다른 선수들도 황인범의 플레이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오세훈은 "크로스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고, 배준호도 "침투 패스 자체가 워낙 좋았다"며 황인범에게 공을 돌렸다. 물오른 활약으로 지단까지 소환해 낸 황인범, 당분간 홍명보호의 중원 걱정은 없을 전망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