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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재밌는거 하네?" 휠체어농구,익스트림 스포츠 방불케한 박진감.. 10년째 타이틀스폰서도 없는 현실[현장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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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의 속력을 가파르게 올리던 춘천 타이거즈의 슛이 림을 맞고 떨어졌다. 쫓기는 코웨이 블루휠스가 리바운드를 낚아챘다. 역습 찬스. 에이스 김상열이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밀었다. 김상열은 춘천 골밑을 향해 가장 먼저 치고 나갔다. 춘천 선수들이 다급히 수비 진영을 갖췄다. 후방에서 김상열의 동선에 맞춰 침투패스가 길게 넘어왔다. 삐비빅! 그 순간 코트 바닥을 찢는 듯한 고무바퀴의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휠체어끼리 부딪히는 쇳소리가 박진감을 더했다. 춘천 수비수 둘이 김상열의 휠체어를 좌우에서 감싸듯 충격했다. 범퍼카가 떠오르는 거친 '길막기' 수비가 제대로 통했다. 김상열은 손을 뻗어봤지만 공은 닿지 않았다. 심판도 휘슬을 불지 않았다. 축구라면 태클, 아이스하키라면 보디체킹에 비유할 만한 파워 넘치는 플레이는 반칙이 아니었다.

춘천 타이거즈와 코웨이 블루휠스는 휠체어농구리그 숙명의 라이벌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춘천 타이거즈가 코웨이 블루휠스를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올 시즌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엄청나게 터프하고 열정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공수 전환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15일 1차전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경기 막판 5점 뒤졌던 춘천 이윤주가 3점 버저비터로 기사회생한 후 연장 승부에서 대역전승을 거뒀다. 16일, 2차전은 코웨이가 제대로 설욕했다. 수비 전술을 새로 들고나와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김영무 코웨이 블루휠스 감독은 "오늘 지면 시즌 끝이다. 외나무다리였다. 우리 선수들이 이런 승부에 강하다. 이윤주(춘천 타이거즈) 쪽에서 나오는 중거리 슛은 버리기로 했다. 그 작전이 초반에 맞아들어가면서 점수차가 벌어졌다"고 돌아봤다.

'코웨이 에이스' 김상열은 지난 시즌 춘천 소속이었다. 1년 전 자신이 쓰러뜨린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친정팀의 골대를 겨눴다. 김상열은 "1차전은 내가 득점을 많이 하고 팀이 졌다. 2차전은 내 득점이 줄었지만 팀이 이겼다. 개인 기록보다 5명이 하나처럼 움직였을 때 농구를 하는 보람을 엄청 느낀다"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코트 안에선 숙적이지만 상대팀이어도 결국 동료이자 동업자다. 김상열은 "춘천 선수들도 다 대표팀이고 자주 만난다. 서로 너무 잘 안다. 배우면서 운동한다. 재밌고 긴장되고 또 이기려고 준비하고 지면 다시 또 준비하고 서로 그렇게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 짜릿한 명승부에 관객이 없었다. 중계도 자체 제작한 유튜브가 전부였다. 김항묵 한국휠체어농구연맹 총무홍보팀장은 "직접 와서 보면 이렇게 재미가 있는데 널리 알려지지가 않아 너무 아쉽다"고 탄식했다. 휠체어농구연맹은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인근 학교에 단체관람을 유치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현장 학교들 반응은 시큰둥하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온도차가 크다. 최근 장애인 인식개선의 일환으로 학교체육 부문에서도 서울림운동회를 비롯한 통합체육이 크게 각광 받는 추세인데 반해 여전히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다. 코웨이 블루휠스는 서울림통합스포츠클럽과 함께 중고등학교에서 휠체어농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생들 반응이 뜨거워 3년 연속 참여한 학교도 있다. 성장기의 학생들이 휠체어농구를 단체로 관람하면서 관심과 체험으로 이어지고 리그 활성화는 물론 장애인스포츠 확산과 사회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휠체어농구연맹, 대한장애인체육회, 교육부가 긴밀하게 협조해 일선 학교들의 관심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프로스포츠는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중계를 하지만 휠체어농구의 경우에는 오히려 방송사가 중계료를 요구하는 실정이다. 10년째 리그가 이어지는 동안 타이틀스폰서조차 붙은 적이 없다. 휠체어농구리그는 문체부의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된다. 김항묵 팀장은 "프로 종목의 20분의1 수준만 되는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된다. 휠체어농구를 통해 사격이나 스키 등 개인 종목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다. 휠체어농구는 장애인스포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종목이다. 휠체어농구에 투자하면 장애인 고용과 장애인스포츠 발전을 통해 사회공헌이 가능하고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코웨이 블루휠스 캡틴 곽준성은 "휠체어농구는 다이내믹하고 터프한 스포츠다. 실제로 보면 진짜 재밌다. 일반 농구 못지않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이 들어오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희망했다. 17일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서도 어김없이 짜릿한 승부가 이어졌다. 코웨이 블루휠스가 김상열의 자유투 한방에 힘입어 1점차 역전승을 거뒀다. 1패 후 2연승을 달리며 챔프전 진출에 성공했다. 22일부터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리그 1위' 제주 삼다수와 격돌한다.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