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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2 필승조의 충격 난조, 그리고 눈물…아프지만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성장으로 갚아라[타이베이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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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대만)=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충격적 난조였다.

2024 WBSC 프리미어12 한일전. 유영찬의 역투 속에 3-2로 다시 리드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 한국은 5회말 1사후 좌타자 고조노가 등장하자 곽도규를 마운드에 올렸다.

곽도규는 앞서 대만, 쿠바전에 등판한 바 있다. 1타자씩만 상대하면서 모두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 짓는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했다. 이날도 고조노와 또 다른 좌타자 다쓰미를 처리하고 이닝을 마치는 게 임무였다. 연투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선발진 줄부상으로 매 경기 불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번 대표팀이었기에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곽도규는 고조노를 7구 승부 끝에 삼진 처리하면서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런데 다쓰미 타석에서 바깥쪽 직구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볼넷 출루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는 일본 4번이자 우타자인 모리시타. 불펜에 우완 이영하가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곽도규가 마운드를 내려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한국 벤치는 곽도규를 그대로 밀고 가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좌타자 상대로 위력을 발휘한 커브가 모리시타에겐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이미 두 타자를 상대하면서 전력투구를 한 여파 탓인지 제구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모리시타마저 내보내면서 주자가 쌓였고, 다시 좌타자 구리하라가 등장했다. 구리하라는 풀카운트에서 3연속 커트로 곽도규를 흔들었다. 결국 9구째 손에서 빠진 공이 구리하라에 맞으면서 사구가 돼 2사 만루 위기가 만들어졌다. 뒤늦게 한국 벤치가 이영하를 마운드에 올렸으나, 마키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내줬다.

류중일 감독은 "감독은 투수 교체가 가장 어렵다. 이영하 투입을 4번(타자)에 하느냐, 6번(타자)에 하느냐 한 타이밍 넘어간 게 패인"이라고 돌아봤다. 벤치 판단에서 운명이 갈렸다.

곽도규는 마운드를 내려온 뒤 더그아웃 한켠에서 초조하게 이영하의 투구를 지켜봤다. 그러나 이영하가 적시타를 내주자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고, 눈물까지 보였다.

경기 뒤 버스로 향하는 곽도규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취재진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곽도규는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버스로 향했다.

프로 데뷔 2년차 곽도규는 올해 V12를 이룬 KIA의 필승조였다. 흔치 않은 좌완 사이드암으로 큰 각의 커브와 빨랫줄 같은 직구가 주무기. 특히 공격적인 투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어내왔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에서도 필승조 역할을 맡아 4경기 모두 구원에 성공했고, 2승을 따내기도.

일본 타자들도 곽도규의 커브에 좀처럼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세하게 벗어난 직구를 참고,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들어오면 집요하게 커트했다. 한국 투수들의 공을 철저하게 연구한 모습이었고, 그대로 실행하면서 확실히 높은 수준을 선보였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국제 무대. 누구보다 잘 던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곽도규다. 그래서 일본전에서의 난조는 스스로에게 큰 상처로 남을 만하다. 그러나 이번 프리미어12는 결과만큼 내용과 배움이 중요한 대회. 일본전에서 얻은 아픈 성적표를 훗날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뛰어난 기량을 갖춘 일본 타자들이 보여준 모습을 토대로 타자들을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

고작 프로 데뷔 2년차. 여전히 던질 날이 많은 어린 투수다. 훗날 다시 찾아올 대표팀에서의 기회, 또 다시 마주칠 수도 있는 일본에게 성장으로 갚아주면 된다.

타이베이(대만)=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