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대만)=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이럴 거면 왜 불렀나."
류중일 야구 대표팀 감독이 단단히 뿔이 났다. 프리미어12를 주관하는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와 개최국 대만의 엉성한 일 처리 때문이다.
류 감독은 12일(이하 한국시각)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진행한 공식 훈련을 마친 뒤 조별리그 B조 참가국인 일본, 호주, 대만,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감독과 미팅을 가졌다. 13일 나고야 반테린돔에서 B조 경기를 치르고 대만으로 건너오는 일본, 호주 감독은 화상으로 참가했고, 나머지 4팀이 얼굴을 맞댔다. 13일로 예정된 B조 1차전 선발 투수 예고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회 규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자리.
그런데 이 자리에서 대만 쩡하오주 감독이 "선발 투수를 오늘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초 B조 공식 기자회견에서 선발 투수를 공개하겠다던 입장을 번복한 것. KBO 관계자는 "대만 측에서 갑자기 '기자회견에선 선발 투수를 공개하지 말자'고 하더라"고 밝혔다.
프리미어12 규정에 따르면, 각 팀 선발 투수 예고는 직전 경기를 마친 뒤 하도록 돼 있다. 첫 경기 선발 투수 예고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는 것. 대만 입장에선 규정에 맞춘 입장을 취한 셈이지만, 대개 국제 대회 첫 경기 전날 선발 투수를 발표하는 관례와는 거리가 있다. 쩡 감독은 B조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국 취재진에 둘려 싸여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끝내 선발 투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 대만 취재진은 "우리도 쩡 감독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진 B조 기자회견. 훈련을 마치고 서둘러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류 감독과 주장 송성문은 시작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WBSC 회장 및 타이베이시 관계자, 스폰서사 소개와 인삿말을 하는 데 긴 시간을 소비했다. 류 감독과 송성문 뿐만 아니라 대만,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감독과 선수도 하릴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어진 참가국 소개.
류 감독과 송성문은 단상에 서서 한참을 서 있었다. 기자회견 때 으레 마련되는 의자나 테이블은 없었다. 류 감독은 사회자가 '대만전이 익숙할텐데, 어린 선수들 위주로 엔트리를 꾸린 배경과 운영 계획'을 묻자 "2026 WBC, 2028 LA올림픽을 목표로 세대 교체를 진행 중이다.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송성문 역시 "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영광스런 자리에 섰다. 훌륭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과의 경쟁이 기대된다"고 점잖게 말했다.
대만팀 소개를 끝으로 행사는 그대로 마무리 됐다. 류 감독과 송성문은 이후에도 한동안 단상에 서서 WBSC, 타이베이시 관계자, 스폰서사 초청 인사들과 기념 촬영을 한 뒤에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행사 명칭은 '기자회견'이었지만, 개막 전 리셉션이라 표현하는 게 나은 분위기였다.
행사 후 국내 취재진과 만난 류 감독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이럴 거면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KBO 관계자도 "감독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만이 국제대회 경험이 없는 건 아니다. WBC, 프리미어12, 아시아야구선수권 등을 개최한 경험은 우리 보다 많을 정도.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대만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CPBL(중화직업봉구연맹)이 아닌 아마-실업 야구를 관장하는 CTBA(대만야구협회)가 운영을 주도하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 야구 관계자는 "경험이 많은 CPBL이 운영을 맡았다면 이 정도로 운영이 엉성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대만)=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