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입스(YIPS)가 총 2번 왔어요. 한화 시절엔 캐칭, 롯데에선 스로잉에서 나왔죠."
압박감이 커진 선수에게 찾아오는 '괴물'이 있다. 바로 입스다.
특정한 동작에서 예민함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근육 경직 등의 이유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퍼팅을 하지 못하는 골퍼,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 등이 대표적이다. 투수의 경우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이라고도 부른다.
골프와 야구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입스는 동작이 아닌 정신상태다. 연주할 수 없는 악기 연주자, 점프에 공포를 느끼는 체조 선수 등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투구에는 문제가 없지만, 송구에 입스가 있어 번트 수비나 견제구를 못하는 투수도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도 홍성흔, 김주찬, 박해민, 심수창 등의 사례가 있다. 그리고 롯데팬에겐 아쉬움 가득한 이름, 지시완도 그 중 한명이다.
롯데는 2017년 강민호 이적후 안방 공백을 메울 선수를 찾고 있었다. 2019년 부임한 성민규 단장은 2차 드래프트에서 베테랑 포수 이해창을 패스한 뒤 "기다리시라. 더 나은 포수를 어떻게 영입하는지 보여드리겠다"는 말을 남긴 뒤, 깜짝 트레이드로 지시완을 영입해 큰 주목을 받았다. 앞서 2018년 6월 손승락을 상대로 끝내기 3점포를 쏘아올려 롯데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주인공이다.
이적 첫해인 2020년에는 3경기 11타석 기회를 받는데 그쳤다. 당시 허문회 전 감독은 지시완을 기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른 포수들의 수비가 더 낫다. 나 같은 반쪽짜리 선수가 되지 않으려면 더 노력해야한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불미스러운 논란이 더해지며 출장정지로 시즌아웃됐다.
팀 내부의 알력에도 휘말렸다. 단장과 감독간의 감정대립, 김준태의 트레이드, 감독 경질 등 많은 일이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1군 등록-말소 때마다 논란은 점점 커졌다.
이듬해 4월에는 경기 막판 방송 중계 카메라가 연습 스윙중인 지시완과 대타로 기용하지 않는 사령탑을 교차해 보여주며 논란에 불을 질렀다. 지시완이 꼽은 가장 억울한 오해다.
"수비를 하지 않고 대타로 나가려면 몸에 땀을 내고 있어야한다. 나는 당연히 준비해야하고, 그렇다고 반드시 감독님이 써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카메라가 날 잡더니, 언론에서 난리가 났더라. '프로세스의 중심' 이런 이미지만 박혀서 날 안 좋게 보신 분이 많았을 거다. 그날 못 뛰었다고 방출된 것도 아니지 않나. 나랑 특수관계도 아니고, 내가 롯데행을 부탁한 것도 아닌데…매순간 눈치를 봐야했다. 우울증도 왔다."
결과적으로 2023년까지 4년간 총 157경기, 407타석의 기회를 받았다. 롯데 시절 1군 통산 성적은 타율 2할2푼5리 10홈런 4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63이다. 블로킹에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강견이 돋보였고, 타격은 팀내 포수들중 손꼽혔다.
첫번째 입스는 한화 시절인 2017년, 캐칭 동작에서 발생했다. 꾸준한 노력 끝에 잘 이겨내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는데, 마음고생하는 과정에서 두번째 입스가 찾아왔다. 이번엔 투수에게 공을 돌려줄 때였다. 2022년 1군 경기중 투수에게 공을 '폭투'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포착됐다. 원인은 뭘까.
"그때 나와 호흡을 맞췄던 투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공을 돌려주다가 심판과 몇번 부딪히고 나서 그렇게 됐다. 공을 딱 던지려는 순간 팔근육이 티라노마냥 확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그래서 힘을 더 주려다보면 넘어가고, 땅에 꽂히곤 했다."
2022년 이후로는 입스에서도 어느정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유강남의 FA 영입, 신예 손성빈의 제대와 성장이 이어지면서 지시완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올해는 1군에 한경기도 나서지 못한채 방출됐다. 롯데 2군과 '최강야구' 몬스터즈와의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올해 2군 출전도 2경기 5타석이 전부다. 지시완은 "앞선 경기중 손가락을 다쳤다. 그날따라 통증이 심했다. 올시즌 내내 3군에만 있었기 때문에 출전이 쉽진 않았을 것"이라며 속상해했다.
"롯데에서 기회를 줬는데 못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좀더 편안한 분위기, 내가 기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면 하는 어땠을까. 항상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분위기에서 경기를 뛰어야했다. 1군 무대에서 보여준 게 많은 선수도 아닌데…'수비 못하는 포수'라는 꼬리표를 끝내 떼지 못한 게 아쉽다."
지시완에겐 스스로를 증명할 무대가 필요했다. 지난 6월 롯데에서 방출된 후 독립리그 연천 미라클에 입단했다. KBSA리그 올스타로 뽑혀 18세 이하(U-18), 23세 이하(U-23) 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치렀고, 최근 2024 교육리그(울산 KBO Fall League)에도 독립리그 올스타로 출전했다.
독립리그 결선에서 10타수 3안타(2루타 1) 4타점을 기록했고, 포수마스크를 쓰며 유상빈 박수현 최수현 등 프로 출신 선수들과 함께 팀의 최종 우승에 공헌했다. 독립리그 올스타로는 예상을 깨고 교육리그에서도 준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롯데와의 예선, 준결승 모두 우천으로 취소됐다. 그는 "하필 롯데전이고, 또 준결승인데 우천 취소 후 예선 1위팀(롯데)이 결승으로 가니까…"라며 아쉬워했다.
지시완은 당분간 아카데미 코치로 활동하며 새로운 팀을 찾을 예정이다. 그는 "팬들께 인사도 없이 떠나 죄송했다"고 했다.
"첫팀이자 고향팀이었던 한화, 항상 열정적이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던 롯데, 함성에 실린 팬들의 마음이 내가 프로선수로 뛰는 힘이 됐다. 부족한 저를 응원해주시고, 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주신 팬분들께 감사드린다. 프로 무대에서 다시 뵐수 있으면 좋겠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