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끝내 한 방은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워커 뷸러의 77.5마일 너클커브에 알렉스 버두고의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자 숨죽이며 그 순간을 기다렸던 동료들과 함께 더그아웃을 박차고 마운드로 달려나갔다.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 진출 7년 만에 꿈으로 간직했던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오타니는 2022년 11월 일본 스포츠매거진 '넘버'와의 인터뷰에서 "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메이저리그 입성 시기를 맞췄다"고 밝힌 바 있다.
'25세 미만의 국제 선수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해야 한다'는 미일 선수계약 협정에 따라 제대로 된 몸값도 받지 못하고 메이저리그를 두드린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오타니가 포스팅을 통해 LA 에인절스와 계약한 2017년 12월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려면 MVP, 홈런왕, 사이영상, 3000안타, 500홈런, 200승, 3000탈삼진, 400세이브 가운데 몇 가지 증표가 필요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 한 줄 들어간다면 금상첨화다.
지난 겨울 FA 투어 끝에 다저스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승 전력이었다. 6년을 살면서 익숙해진 서부지역의 명문 구단 다저스라면 자신의 꿈을 좀더 일찍 이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10년 7억달러에 계약하면서도 97%인 6억8000만달러를 10년 뒤 받겠다고 한 것도 우승 전력을 꾸준히 유지해 달라는 뜻을 담은 장기 포석이었다.
이적 첫 해 월드시리즈 우승은 그래도 예상 밖이다. 다저스는 2020년 60경기 단축시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지만, 162경기 시즌 우승은 1988년이 마지막이었고, 더구나 내셔널리그 1위를 해도 와일드카드시리즈 도입으로 12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현행 제도에서 우승은 더욱 힘든 일이 됐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포스트시즌에 오른 자체가 특별했다. 에인절스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던 기회가 찾아오자 디비전시리즈(DS),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에서 타율 0.310, 54홈런, 130타점, 134득점, 59도루, OPS 1.036을 마크한 정규시즌 기세를 이어갔다. DS 1차전에서 3회말 동점 3점포를 터뜨리며 가을야구도 정복할 기세였다. NLCS 3,4차전에서 각각 쐐기 3점홈런, 선제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다저스가 시리즈를 3승1패로 리드하는데 앞장 섰다.
DS와 NLCS 합계 11경기에서 타율 0.286, 3홈런, 10타점을 때리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오타니는 단 한 개의 홈런도 타점도 올리지 못했다. 5경기에서 타율 0.105(19타수 2안타)에 2득점, 2볼넷, OPS 0.385에 그쳤다.
오타니는 올 정규시즌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50-50을 달성했다. 그렇게 강했던 방망이와 빨랐던 발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2차전서 7회말 2루 도루 때 슬라이딩을 하다 왼쪽 어깨를 다친 탓도 있었다. 완전 탈구는 아니라고 했지만, 타격과 베이스러닝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다저스의 통산 8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MVP는 프레디 프리먼이다. 1~4차전, 4경기 연속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리고 12타점을 올렸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인 2021년부터 따지면 월드시리즈 6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사상 첫 금자탑도 세웠다. 다들 오타니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먼이 주연으로 등극한 것 역시 예상 밖이다.
오타니는 조연도 아니었지만, 정규시즌 내내 부상자가 속출한 다저스 전력을 유지하고 떠받든 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공은 생애 세 번째 정규시즌 MVP로 받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월드시리즈서 한 방 못 날린 것 역시 예상 밖의 일이다.
우승 확정 후 오타니는 "굉장히 멋진 경기였다. 시즌을 이렇게 멋지게 끝마쳤다"며 "이런 팀의 일부라는 게 영광이다. 이 팀에서 첫 시즌을 동료들과 함께 노력을 기울여 끝까지 싸울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