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5년 스폰서십' 종료…연장 계약 가능성 작다는 관측 우세
유럽 여자축구는 화장품·패션·유아용품 등 여성 친화 기업이 후원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설하은 기자 = 여자 축구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줄 든든한 새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날 수 있을까.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다음달 공식 파트너 협약 기간이 끝나면서 신세계 그룹과 대한축구협회의 동행이 종료될 걸로 전망된다. 후원 계약 연장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는 2019년 6월부터 5년간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과 여자축구 저변 확대 등 축구 발전을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100여억원을 지원했다.
당초 이 계약은 지난 5월에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6개월 연장돼 내달 끝난다.
신세계는 여자 국가대표 훈련 프로그램 지원, 연 2회 이상 친선경기 개최 등 여자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에 주안점을 뒀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후원이 여자축구의 '젖줄' 노릇을 했다고 본다. 여자팀 A매치 운영에 드는 제반 비용, 감독 선임을 비롯해 축구 저변 확대 등에 요긴하게 쓰였다.
양측의 입장을 종합하면 대한축구협회와 신세계의 결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계약 연장 여부와 관련한 연합뉴스 질의에 신세계 측은 우선 이번에 5년 기간이 끝나면서 후원도 자동으로 종료된다고 답했다.
재계약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걸로 풀이된다.
신세계는 대한축구협회와 계약 기간 중인 2021년 프로야구 SSG 랜더스를 인수해 스포츠 분야에서 다른 투자처를 확보했다. SSG는 2022년 곧장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대로라면 대한축구협회는 신세계를 대신할 새 후원 기업을 물색해야 한다.
하지만 여자축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기업을 찾기 어려워 난제 중의 난제가 됐다.
기업 입장에서 스포츠 기관·구단과 동행은 사회 공헌을 위한 홍보인 동시에 이익을 철저히 계산해야 할 '투자'다. 이런 측면에서 여자축구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조성식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는 "기업 후원은 시장원리와 사회 분위기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여자축구에 대한 수요, 호기심, 사회적 인식은 약하다"며 "특히 여성 스포츠 중 '남성성'이 강하면 인기가 없다. 여성성이 강조되는 스포츠는 대중 수용성이 높다"고 짚었다.
후원의 목적·기대 효과를 엘리트팀의 선전으로만 좁히지 않고 '여자도 축구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을 설득하는 게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우리나라 여자축구는 '선수'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여성적인 것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라는 조 교수는 "반면 미국에서는 과격한 스포츠도 '여성이 건강하게 즐긴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비교하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보기 때문에 수요와 호기심, 사회적 인식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 여자축구는 이런 상업화 전략이 들어맞아 양적·질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초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여자축구 '최전선'인 유럽 구단들은 여성 팀이라는 특성을 살려 각종 후원 계약을 했다.
5개 리그(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15개 팀이 2022-2023시즌 수입 절반 이상을 스폰서·파트너십 등으로 벌어들인 걸로 나타났다.
최고 수입을 올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자팀은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릴라스틸의 후원을 받는다.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의 아스널은 스텔라 매카트니(패션), 첼시는 린달스(유제품)를 후원사로 잡았고, 맨체스터 시티는 홈구장 네이밍 스폰서로 글로벌 유아용품 업체 조이를 선정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스포츠용품을 비롯해 화장품, 패션, 육아용품 등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기업이 여성 엘리트 스포츠 후원하는 경우가 드물다.
여자실업축구 WK리그만 봐도 타이틀 스폰서 HD현대인프라코어 디벨론과 경기구를 제공하는 스타스포츠를 제외하고는 스폰서 계약이 하나도 없다.
과거 한 화장품 업체에 후원 제의를 했지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는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남녀 대표팀에 물품을 지원하지만, 신세계처럼 여자축구를 특정해 주요 후원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해외 여성 스포츠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의 움직임만 감지된다.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브랜드 라네즈는 지난 7월 18∼20일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올스타전 기간 피닉스 머큐리와 이벤트성 협업을 진행해 미국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고 글로벌 브랜드로 가속화를 꾀했다.
냉담한 시장 반응을 극복하려면 여자축구의 잠재력을 기업에 설명해야 하는 책임 기관들의 협상력과 비전이 중요하다.
재미동포 여성 사업가로, 워싱턴 스피핏(미국), 올랭피크 리옹 페미닌(프랑스), 런던시티 라이어니스(잉글랜드) 구단주인 미셸 강 회장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여자축구가 품은 비전에 매료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강 회장은 지난 8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도 "여성 스포츠가 좋은 사업이라는 걸 증명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절대 자선이 아니다. 진지한 투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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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