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놀랍도록 닮은 꼴이다.
LA 다저스가 43년 만에 성사된 '꿈의 매치'에서 역사에 남을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다저스는 26일(이하 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연장 10회말 프레디 프리먼의 끝내기 만루홈런에 힘입어 6대3으로 승리했다.
다저스는 2-3으로 뒤진 10회 개빈 럭스의 볼넷과 토미 에드먼의 내야안타로 1사 1,2루 찬스를 잡았다. 이어 오타니 쇼헤이가 바뀐 투수 좌완 네스터 코르테스에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다. 양키스 좌익수 알렉스 버두고가 파울지역으로 달려나와 파울을 잡은 뒤 펜스 너머 관중석으로 거꾸로 넘어지는 믿기 어려운 수비였다.
주자들이 한 루씩 진루에 2사 2,3루. 여기에서 애런 분 양키스 감독은 통상적인 방식으로 무키 베츠를 고의4구로 걸러 만루 작전을 폈다.
하지만 프리먼의 방망이가 그렇게 폭발할지 상상조차 못했다. 프리먼은 코르테스의 초구 92.5마일 몸쪽 낮은 직구를 걷어올려 우측 담장을 크게 넘어가는 그랜드슬램으로 연결했다.
발사각 30도, 타구속도 109.2마일로 맞는 순간 다저스타디움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로 들썩였다. 타구는 우측 담장 외야석 팬들 사이, 비거리 423피트 지점에 떨어졌다. 프리먼의 이번 포스트시즌 첫 홈런이다. 무엇보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다저스타디움에 아로새겼다.
당장 1988년 월드시리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무서운 '데자뷔'다. 다저스는 그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3-4로 뒤진 9회말 2사 2루서 대타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으로 5대4로 승리했다. 당대 최고의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의 그 유명한 백도어 슬라이더를 가볍게 끌어당긴 것이 라인드라이브로 우측 관중석으로 넘어갔다. 1차전을 잡은 다저스는 결국 4승1패로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놀랍도록 닮은 것은 깁슨과 프리먼 둘 다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부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당시 깁슨은 끝내기 홈런을 친 뒤 다리를 절룩거리며 베이스를 돌았다. 포스트시즌 동안 왼쪽 햄스트링과 오른쪽 무릎이 말썽을 부리고 있었다.
프리먼은 올 정규시즌 막판 땅볼을 치고 1루로 전력질주를 하다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여전히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 깁슨의 끝내기 홈런에서 프리먼의 끝내기 만루포로 바뀐 것이다.
그 다음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홈런을 치고 들어온 프리먼은 내야 스탠드에 자리잡은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아버지 얼굴이 보이길래 그냥 소리를 질렀다. 죄송해요 아버지"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곳에 계셨다. 매일 나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셨다. 지금 이 순간은 아버지의 순간"이라며 감격해했다.
역대 7전4선승제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1차전을 이긴 팀이 해당 시리즈를 거머쥔 것은 193번 중 125번으로 그 확률이 64.8%에 이른다. 또한 2-3-2 포맷의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1차전 홈경기를 이긴 팀은 101번 중 68번, 즉 67.3%의 확률로 해당 시리즈를 가져갔다.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역사적 확률은 65% 정도다.
이날 다저스 승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은 오타니 쇼헤이다. 3번째 타석까지 무안타로 침묵하던 오타니는 1-2로 뒤진 8회말 1사후 우완 토미 칸레의 2구째 87.1마일 한가운데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우월 2루타를 터뜨린 뒤 상대 유격수 앤서니 볼피의 실책을 틈타 3루까지 진루했다. 이 타구는 발사각 19도, 113.9마일(183㎞)의 속도로 날아 우익수 후안 소토의 머리를 넘어 펜스 상단을 때렸다. 비거리 378피트로 2피트만 더 날았어도 홈런이 됐을 타구였다.
이어 베츠가 중견수 뒤로 깊은 희생플라이를 때려 오타니를 불러들이며 2-2 동점을 만들었다. 오타니의 장쾌한 2루타가 가라앉아 있던 다저스 벤치를 자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비록 5타석에서 안타 1개 밖에 날리지 못했으나, 8회 2루타는 패색이 짙던 경기 막판 분위기를 바꾼 게임 체인저(game-changer)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