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경기를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는지 모르겠다"
(울산=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논두렁 그라운드'의 민낯은 아시아 무대에선 더욱 초라했다.
아시아 프로축구 최고 권위 대회인 2024-20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의 첫 경기가 16∼18일 대륙 전역에서 열렸다.
챔피언스리그(ACL)가 상위 대회 ACLE와 하위 대회 챔피언스리그2(ACL2)로 나뉘고서 처음 진행되는 시즌이다.
빠르게 팽창하는 아시아 축구 시장을 바탕으로 덩치를 불려 가는 AFC는 ACLE를 출범시키면서 홈 앤드 어웨이의 조별리그를 없애고 각 팀이 여덟 상대와 한 번씩 대결하는 리그 스테이지를 도입하는 등 많은 변화를 줬다.
특히 대회 규모를 확 키웠다. 기존 ACL에서 400만 달러였던 우승 상금이 1천만 달러(약 133억원)로 두 배 넘게 불어났다.
K리그1(5억원)에서 스물일곱 번 우승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ACLE 첫 매치데이에 한국에서는 두 경기가 열렸다.
17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시민구단 광주FC가 화끈한 공격축구로 일본의 강호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7-3으로 격파하며 아시아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18일에는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일본의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홈팀 울산 HD를 1-0으로 물리쳤다. 비록 K리그 팀이 졌으나, 가와사키가 펼쳐 보인 고품격 압박축구는 한국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을 터다.
선수들은 아시아 최고 대회에 걸맞은 열정을 발산했다. 그러나 한국 축구경기장의 그라운드는 이들이 기량을 온전히 펼쳐 보이기에는 너무도 열악했다.
특히 문수축구경기장 그라운드는 군데군데 팬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선수들이 기본적인 패스와 드리블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원정을 온 두 일본팀 사령탑들은 한국 경기장의 열악한 잔디 상태를 입을 모아 지적했다.
존 허친슨 요코하마 감독대행은 "잔디에 문제가 있었다. AFC가 선택한 것이지만,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보단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승장'으로 떠난 오니키 도루 가와사키 감독은 더 구체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오니키 감독은 '문수축구경기장의 그라운드가 ACLE 경기를 치를 자격이 있다고 보는지'를 묻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라고 전제한 뒤 "모든 선수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그라운드가,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오니키 감독은 이어 "선수들이 자신의 개성과 기량을 다 보여주면 그게 관중에게 전달되는데, 그런 부분이 이어지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9시즌째 가와사키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전 한국 국가대표 정성룡도 한국의 잔디 상태를 아쉬워했다.
가와사키는 울산 팬들 사이에서 '또와사키'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거의 매년 울산과 ACL에서 맞붙은 터라 정성룡은 문수축구경기장 그라운드 상태에 대해 잘 안다.
정성룡은 "잔디 상태가 안 좋으면 부상 우려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작년보다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우리 가와사키 선수들뿐 아니라 울산 선수들도 아주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중들도, TV로 경기를 보는 팬들도 잔디가 개선되기를 바랄 것"이라면서 "요즘 K리그에서 좋은 축구가 펼쳐지고 있는데, 잔디가 좋아진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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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