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 공격 장려되는 라운드 승패제…동점서 누가 이길지 관중도 알아야
(파리=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스포츠는 흥미로워야 하고, 관중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물을 흔들면 골이라는 걸 아는 축구, 농구처럼 직관적으로 쉬워야 한다."
프랑스태권도협회 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김종완(73) 전 루앙대 교수는 2024 파리 올림픽 개막 직전 '올림픽 스포츠' 태권도가 갈 방향을 이같이 제시했다.
'관중이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건 태권도의 지상과제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도 지난 5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중, 관중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스포츠는 올림픽 종목으로 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WT는 경기 방식에도 끊임없이 변화를 줬다.
2020 도쿄 올림픽까지 태권도는 3라운드 내내 점수가 쌓여 총점을 비교해 승패를 가렸다.
파리 올림픽에는 3전 2승제가 시행됐다. 한 라운드가 끝나면, 새 라운드 점수는 0-0으로 돌아간다.
1라운드를 크게 져도 2라운드에 만회할 수 있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최종 승부를 겨룰 수 있어 승부에 변동성이 생겼다.
한 라운드 내에서도 고득점의 공격이 더 많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규정도 갖췄다.
라운드가 동점이 되면 회전차기로 딴 점수가 더 많은 선수, 머리-몸통-주먹-감점의 순으로 낸 점수가 더 많은 선수, 전자호구 유효 타격이 많은 선수 순으로 승자를 결정한다.
동점이 되면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고난도 기술이 승부를 가르는 터라 뒤차기, 뒤후려차기 등 회전 공격을 장려하는 효과가 생긴다.
한국 대표팀의 오혜리 코치는 "(규정 개정 이후) 앞(차기) 동작보다는 뒤로 도는 동작을 무조건 훈련 프로그램에 넣었다. 수업에서도 필수적으로 연습시킨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코치 등 한국체대 연구진이 2022년 대학 선수 2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박진감이 더 생겼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번 대회 8개 체급에서 이런 '동점 라운드'가 총 43회 나왔다. ▲ 남자 58㎏급 1회 ▲ 남자 68㎏급 4회 ▲ 남자 80㎏급 10회 ▲ 남자 80㎏ 초과급 6회 ▲ 여자 49㎏급 3회 ▲ 여자 57㎏급 7회 ▲ 여자 67㎏급 4회 ▲ 여자 67㎏ 초과급 8회다.
선수, 지도자들은 경기 중 자신이 얼마나 회전 공격을 시도했고, 상대 머리를 타격했는지 안다.
그런데 이번 대회 태권도 경기장이 마련된 그랑팔레에 모인 8천여명의 관중들 사정은 다른 듯햇다. 동점으로 라운드가 끝나면 정적이 흐르고, 심판이 한쪽의 승리를 선언해야 함성이 나왔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여자 67㎏ 초과급 금메달을 딴 프랑스의 알테아 로랭을 응원한 관중은 라운드 동점인데 왜 승패가 갈렸는지 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로랭은 치른 4경기 중 2개 라운드에서 동점이 나왔다. 결승전의 결승 라운드도 그랬다.
스베틀라나 오시포바(우즈베키스탄)가 경기 종료 1.7초 전 머리 공격을 성공한 상황에서 종료와 동시에 로랭이 쭉 뻗은 발이 오시포바의 머리를 차 3-3이 됐다.
심판이 로랭의 승리를 선언하며 그랑팔레를 채운 프랑스 팬들은 일단 환호했다.
둘 다 회전 공격 없이 상대 머리를 한 차례씩 타격한 것만 알려진 가운데 어떤 후속 기준에 따라 로랭이 이겼는지 현장을 찾은 관중이 바로 알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서건우(한국체대)도 남자 80㎏급 16강전 2라운드를 16-16으로 마치고 판정 문제를 겪었다.
상대보다 회전 공격을 하나 더 성공한 걸 알았던 서건우와 오혜리 코치는 이긴 줄 알았으나 패배가 선언되자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회전 공격보다 감점이 우선순위로 설정된 걸 뒤늦게 확인한 심판진이 승패를 번복했다.
이 과정에서 5분가량 경기가 사실상 중단됐다. 경기 관계자들이 각 장면과 시스템을 급하게 검토해 오류를 정정했으나 관중들은 16-16이 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오 코치는 "사실 (코트 위) 전광판에는 머리 공격 숫자 등이 다 나오는데 관중석과는 너무 멀어서 그게 보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니 관중분들께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이런 부분에 대해 사전에 홍보가 이뤄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 관중들은 중계를 못 보는데, 현장에서 규정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자세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태권도가 더 대중화돼서 이 규정에 다들 익숙해질 때가 올 거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모르는 관중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광판 표시 등 여러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pual0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