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절치부심한 추창민 감독(58)이 돌아왔다.
정치 휴먼 영화 '행복의 나라'(파파스필름·오스카10스튜디오 제작)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 그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행복의 나라' 연출 계기부터 작품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털어놨다.
'행복의 나라'는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과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979년 발생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주도한 김재규 정보부장의 심복이자 거사에 연루된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를 비롯한 재판 변호인단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역사적 사건인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 사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 '행복의 나라'는 실화가 주는 묵직함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13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에 이어 다시금 극장가 '심박수 챌린지'를 유발하는 이야기로 여름 극장 기대작으로 등극했다.
이날 추창민 감독은 '행복의 나라'를 연출한 과정에 대해 "나는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이지만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는 자세하게 몰랐다. 박흥주 대령을 찾아보니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더라. 단순히 이 인물을 표현하는 게 맞나 싶긴 했다. 박흥주 대령의 판결은 아직 물음표다. 이 인물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가진 가치도 가져가길 바랐다. 시대의 상징성을 대입해 보여주면 어떨까 싶어 연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박흥주 대령에 대해 미화시키려는 부분을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다. 그 분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좌우 진영을 떠나 많은 부분을 박수 받고 있더라. 박흥주 대령은 실제로 어렵게 자랐지만 누구보다 군인 임무에 충실했다. 높은 지위에 있지만 그 어떤 비리도 없었다고 했고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점수로 나왔지만 힘든 전방 근무를 지원했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의 연장선에서 대통령을 시해하라는 30분의 잘못된 선택으로 전체를 비난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과연 나라면 30분 안에 결정할 수 있을지?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떤 식으로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러니가 있다. 영화 속에서도 그러한 박흥주 대령의 고민을 다뤘고 관객은 어떤 선택을 할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아이러니 속에 관객이 이 영화에 몰입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은 변호사였다. 과거엔 금지된 자료가 현재엔 많이 공개되기도 했다. 가장 처음에는 국회 도서관을 가서 그 당시 법정 자료를 다 봤다. 박흥주 대령의 후원회 같은 것도 있는데 그분들의 말을 듣기도 했다. 박흥주 대령의 유족을 만나려고 했는데 유족 측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반대하지 않겠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우리 영화 시사회 때도 박흥주 대령의 동창들이 영화를 보고 가기도 했다. 공공 자료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법리적으로 검토를 했을 때 큰 문제 없는 선에서 영화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자신했다.
'행복의 나라'는 '남산의 부장들'(20, 우민호 감독)과 '서울의 봄' 사이의 이야기로 많은 관심을 받는 중. 이에 대해 추창민 감독은 "'서울의 봄'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 영화를 보면서 관객으로서 속이 시원했다. 개인에 대한 일갈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영화 속 전두환의 모습은 시대의 상징이다. 훨씬 점잖고 명분을 내세우지만 날카로운 욕망을 감추고 있다. 황정민의 전두환은 욕망을 드러내고 달리는 사람이지만 우리 영화 속 전두환은 욕망을 감춘다. 그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의 봄'은 소위 말해 전두환을 가깝게 묘사했다면 우리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려다 보니 좀 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전두환이 그려졌고 그걸 유재명이 잘 표현한 것 같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김성수 감독과 '행복의 나라' '서울의 봄'을 논의했다는 추창민 감독은 "김성수 감독과 시나리오를 같이 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시나리오 모니터 해준다. 김성수 감독과 고민했던 지점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같이 하는 게 맞을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분명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고 뉘앙스적으로도 각자 해보자 싶었다.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했고 이제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고 고백했다.
흥행 부담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추창민 감독은 "사실 '광해: 왕이 된 남자'(12)가 1232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처음 그 스코어가 나왔을 때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있다니'라며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부담도 컸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이 된 이후 많은 권력까지는 아니지만 외부적인 부분 등의 것이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나가면서 '너무 가벼워져서 좋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동감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무거운 짐이 굉장히 부담이 됐다. 그러다 보니 '7년의 밤'(18)을 선택하게 됐다. '7년의 밤'은 조금 편하게 접근하게 됐는데 그래서 망했다. 망하니 또 너무 크게 다가오더라. 영화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 자본이 들어갔는데 망한 영화가 돼서 자각이 됐다. '행복의 나라'를 열심히 만들었고 잘 되면 좋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최소한 이 영화를 같이 만든 이들에게 폐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유작으로 남게 된 이선균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밝혔다. 추창민 감독은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이 먼저 이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가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를 내게 말해줬는데 '조정석과 연기해보고 싶다' '조정석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상대해 보고 싶다'라고 하더라. 배우로서 호기심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을 만났을 때도 그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작품을 선택한 것처럼 이선균은 우리 영화에서 상대 배우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실제로 조정석이 연기할 때 나와 같이 끝까지 모니터를 보면서 '진짜 잘한다'며 감탄했다. 나는 이선균이 해준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실제로 박흥주 대령의 모습과 영화 속 모습이 너무 닮았더라"고 밝혔다.
이어 "물론 관객이 이선균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것이다. 그건 관객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그 배우를 사랑하지만 그 배우가 안타까워 영화를 안 보려 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좋은 배우를 잃게 됐는지는 느낄 수 있다. 언젠가 이 영화를 보게 될 때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정말 좋은 배우였다는 걸 느끼지 않을까"며 "이선균은 굉장히 뜨거운 배우다. 소년 같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직설적인 배우라고 느꼈다. 소위 말해 버럭도 잘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이선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더라. 박흥주는 내면은 정말 뜨겁지만 노출되지 않는다. 말도 굉장히 정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선균이 딱이었고 영화를 보면 이선균이 200% 이상 소화했다고 본다"고 마음을 전했다.
'행복의 나라'는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 등이 출연했고 '광해, 왕이 된 남자' '7년의 밤'의 추창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14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