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지난 겨울 우리 선수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는데, 그런 훈련의 결과 (청룡기)우승으로 이어져 기쁩니다. 우리 3학년 선수 모두가 MVP입니다(주창훈 전주고 감독)."
1985년 이후 39년만의 전국대회 우승. 창단 이래 첫 청룡기 우승.
창단 99년, 재창단 47년의 전주고 야구부가 위치한 전라북도는 오랫동안 고교야구 변방으로 평가받았다. 오래전 프로야구 쌍방울의 가장 큰 약점도 '연고지에 고교야구팀이 군산상고(현 군산상일고), 전주고 2개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전북의 맹주로 활약한 팀은 군산상일고였고, 전주고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있었다. 김원형, 박경완, 최형우, 박성기, 신용운, 박정권 등 프로야구를 좌지우지한 스타들에 조진호라는 전 메이저리거까지 배출한 학교지만, 약체팀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00년대에는 한때 선수가 13명에 불과한 시기가 있었을 만큼 존폐 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전주고는 16일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우승을 품에 안으며 본격적인 야구 명문교로 거듭나기 위한 기반을 갖췄다.
최재호 강릉고 감독(63)을 비롯해 이영복 충암고 감독(55), 정윤진 덕수고 감독(53), 송민수 장충고 감독(52) 등 고교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터줏대감 명장들 사이에서 1981년생 젊은 감독이 일궈낸 빛나는 성과다.
우승 직후 주창훈 전주고 감독(43)의 머릿속엔 2019년 협회장기(현 이마트배), 2022년 대통령배, 2024년 이마트배에 이르기까지 거듭된 전국대회 좌절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눈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이내 눈물이 차올랐다.
전주고의 감격은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 우수 선수를 찾기 위해 전국을 발로 뛴 사령탑의 노력, 그리고 초고교급 재능의 만남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결국 첫 걸음을 떼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한 전주고 동문회 관계자는 2018년 "주창훈 감독의 부임이 터닝포인트였다"고 회상했다.
주창훈 감독은 광주상고-원광대-KIA 타이거즈를 거쳤다. 전주고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부임 직후부터 직접 전국을 돌며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한편,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학교와 동문회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서울고에서 전학온 박재민(롯데 자이언츠)의 활약 속 2019년 협회장기 준우승이 기폭제가 됐다.
이후 전주고는 기숙사 설립, 야구장 정비, 조명탑 설치, 훈련비 지원 등 야구부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는 주창훈 감독의 지도력과 시너지 효과를 냈다. 결국 이한림, 이호민, 서영준, 성민수 등 주창훈 감독이 직접 키워낸 우수한 선수들의 잠재력에 신일고에서 전학온 정우주, 엄준형의 재능이 더해지면서 올해에만 2번의 전국대회 결승 진출, 그중에서도 청룡기 우승으로 이어졌다.
주창훈 감독은 "사실 이마트배 때 결승까지 올라가면서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황금사자기보다는 청룡기에 초점을 맞춰 준비했는데, 그 결과를 낼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고 강조했다.
예년보다 빠르게 동계훈련을 시작, 그 어느 팀보다도 고된 겨울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주창훈 감독은 "내 훈련을 소화해준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특히 9명의 3학년들이 함께 팀을 이끄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며 울컥한 속내를 전했다.
사령탑과 학교의 노력이 팀 우승의 주춧돌이라면, 여기에 지난 눈물을 잊지 않은 선수들의 의지가 원동력이었다.
오는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를 다투는 에이스 정우주는 "목표였던 청룡기 우승을 이뤄내서 정말 기쁘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절실하게 돌아봤다. 7경기 14⅔이닝을 소화하며 3승무패, 평균자책점 0.60의 눈부신 성적이 돋보인다.
타율 3할1푼8리 2홈런 10타점, 결승전 결정적 3점 홈런까지 터뜨리며 대회 최우수선수(MVP) 타점왕 홈런왕을 휩쓴 안방마님 이한림 역시 "1학년 때부터 시합을 뛰었는데, 매번 결승에서 졌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청룡기만큼은 우리 선수들한테 '오늘만 이기자. 어떻게든 이기자'고 계속 강조했다"며 활짝 웃었다.
이날 전주고 야구부 후원회는 재학생과 졸업생을 총망라해 700여명의 응원단을 현장에 파견했다. 전문 치어리더팀까지 섭외해 모교를 향한 응원에 열을 올렸다. 지난 이마트배 결승전 패배에 대해 '응원부터 밀렸다'는 뼈저린 반성이 있었다고. 백발에 전주고 유니폼을 차려입은 노(老)졸업생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붉은색, 검은색, 흰색 전주고 유니폼을 입은 응원단은 교가 제창은 물론 수비중에도 투수의 이름을 연호하고, 거침없이 깃발을 휘둘렀다. 전주고의 승기가 굳어지자 오오렐레(K리그 전북현대의 대표 응원)를 외치며 목동구장을 전주성으로 만들었고, 이는 전주고의 우승을 뒷받침한 힘이 됐다.
목동=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