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6시57분(현지시각),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는 트리플 크라운의 제1관문이자, 총상금 500만달러를 놓고 벌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더트경주 '제150회 켄터키더비(G1)'가 뜨거운 열기 속에 펼쳐졌다.
'스포츠에서 가장 흥미로운 2분(The most exciting two minutes in sports)'이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이 경주는 켄터키주를 넘어 미국 전역의 관심을 받는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이다. 실제로 한국 캠프워커에 주둔중인 미군들이 경주에 앞서 함께 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미국 NBC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등 켄터키더비는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자긍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미 4월부터 루이빌 일대는 켄터키더비 페스티벌로 떠들썩한데 오프닝 이벤트로 펼쳐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꽃쇼부터 에어쇼, 마라톤, 벌룬쇼, 페가수스 퍼레이드 등이 천조국답게 압도적 규모로 관람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민트 줄렙(Mint Julep)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며 경주를 관람하거나, 출전마들이 경주로에 입장할 때 15만명이 넘는 관중이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켄터키의 옛집(My Old Kentucky Home)'을 열창하는 전통 또한 이색적인 즐길거리다.
올해는 특히 150주년이라는 영광스러운 역사와 함께 총상금을 전년도 300만달러에서 500만달러로 대폭 상향했다. 최대 출전두수인 20두가 출전해 게이트를 가득 채우고 시작된 경주에서 가장 스타트가 좋았던 말은 인기 1위이자 최고 레이팅 120에 빛나는 '피어스니스(Fierceness)'였다.
페가수스 월드컵 등에서 우승했던 '시티오브라이트(City of Light)'의 자마이기도 한 피어스니스는 '로드 투 켄터키더비' 중 하나인 '플로리다 더비(G1)'에서 우승하며 승점 100점을 획득해 높은 점수로 켄터키더비에 참가한 강력한 우승후보다. 삼관마 저스티파이(Justify)의 자마인 저스트스틸(Just Steel), '1세마 경매가 230만불'이라는 놀라운 몸값을 자랑하는 시에라레온(Sierra Leone) 등도 좋은 출발을 보였다.
또 다른 인기마였던 포에버영(Forever Young)과 캐칭프리덤(Catching Freedom) 등은 경주 초중반 좀처럼 선두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2024 UAE더비(G2), 사우디더비(G3)를 연속 우승하며 중동을 휩쓴 포에버영은 마주의 이력이 다소 특이한데 일본 IT업계의 대부이자 우마무스메로 유명한 사이게임즈의 모회사 사이버에이전트 사장인 후지타 스즈무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 직선 구간에 들어서는 순간 인코스를 지켜내며 '미스틱댄(Mystik Dan)'이 선두에 나섰고, 바깥쪽에서 거의 맞붙어 달리다시피 하던 '시에라레온'과 '포에버영'이 각각 코차로 2위, 3위로 들어왔다. 반면 최고 인기마였던 피어스니스는 15위에 그쳐 팬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우승마인 미스틱댄에게는 1위 상금 310만달러와 함께 켄터키더비의 또 하나의 상징인 붉은 장미로 장식된 화환 담요가 주어졌다. 우승기수인 브라이언 에르난데스는 장미 꽃송이를 뿌리며 소년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조교사인 케네스 맥픽과 함께 바로 전날인 4일 펼쳐진 '제150회 켄터키오크스(G1)'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더비-오크스 더블'이라는 이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맥픽 조교사는 2019년 코리아컵(G1)에 '하비월뱅거(Harvey Wallbanger)'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작년 켄터키 자키클럽 스테익스 우승 이력을 가진 '아너마리에(Honor Marie)'에 기승한 아일랜드 기수 벤 커티스 역시 신예시절 한국의 국제기수 초청경주에 출전한 바 있다.
지난 사우디컵 경마 주간 때도 '리메이크(Remake)', '아나프(Annaf)' 등 과거 한국 국제경주 출전이력을 가진 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그간 한국이 경마의 국제화, 스포츠화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리플 크라운의 제2관문인 프리크닉스 스테익스(G1)은 오는 18일 볼티모어 핌리코 경마장에서 개최된다.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 스테익스(G1)는 6월 첫째 또는 둘째 주 토요일 뉴욕 벨몬트 경마장에서 열리는데, 단 5주라는 기간 동안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 경주를 치러야 하는 강행군으로, 1800년대 후반부터 시행되어온 이 경주에서 삼관 달성마는 13두 뿐. 그마저 21세기 우승마는 아메리칸파로아(Amrican Pharoah)와 저스티파이(Justify) 단 2두다.
미스틱댄이 이대로 여세를 몰아 프리크닉스 스테익스에서도 선전할지, 이번 경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초유의 이변을 일으키며 새로운 말이 등장할지 전설적인 삼관마의 탄생 여부를 놓고 2024년 전세계 경마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