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천성호마저 없었다면, KT는 어쩔 뻔 했나.
팀 성적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신데렐라'처럼 나타나 성장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팀 팬들은 그 선수 때문이라도 야구를 본다.
올시즌 KT 위즈는 10개팀 중 가장 암울한 출발을 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팀이, 치열한(?) 꼴찌 싸움을 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슬로스타터'라고 하지만, 올시즌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KT가 과연 반등할 수 있겠느냐 의문의 시선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선수를 보면 뭔가 희망이 생긴다. 어렵게 거둔 9번의 승리에 엄청난 지분이 있다. 바로 혜성처럼 등장해 리드오프 자리를 꿰찬 천성호다.
24일 한화 이글스전, 류현진 격파에도 선봉에 섰다. KT는 3회와 4회 각각 3점과 4점을 뽑으며 '괴물'을 무너뜨렸는데 천성호는 3회 류현진을 당황케 하는 천금 동점타에, 4회 승부에 쐐기를 박는 내야안타까지 쳤다. 4회는 1사 2루 상황서 천성호의 안타 때 한화 황영묵이 송구 실책을 저질러 2루주자 김상수가 홈까지 들어와 7번째 점수가 만들어졌다. 천성호의 타점은 아니었지만, 타점과 다름없었다.
보고 있으면 "잘 친다"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홈런은 단 1개도 없다. 펀치력은 분명 부족하다. 그런데 방망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컨택트 능력이 탁월하고, 밀고 당기기를 마음대로 한다. 시즌 타율이 3할7푼2리다. 안타가 벌써 45개. 타율은 리그 전체 4위다. 토종 선수 1위. 안타는 압도적 1등이다. 2위 팀 동료 강백호가 37개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일본야구의 '레전드' 이치로를 보는 것 같다. 많이 살아나가니, 득점도 26개로 1위를 달리고 있다. KT 팀이 부진할 뿐, 천성호부터 강백호-로하스 라인은 탄탄하다. 득점을 기록하기는 '천혜의 환경'이다.
많이 치는 것도 중요한데 기복이 없다. 개막 후 5할대 '미친 타율'을 기록할 때 "얼마나 가겠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시즌 끝까지 갈 것 같은 믿음을 주는 타격이다. 올시즌 KT가 치른 28경기, 전 경기에 나섰는데 무안타 경기가 단 2번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기회를 잡은 과정도 대단하다. 지난 시즌 상무에서 퓨처스 타격 타이틀을 차지하고 KT에 돌아왔다. 이강철 감독도 타격 자질이 있다는 건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내야수로 타격에 비해 수비가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누구보다 내야수의 수비 실력을 중요시 하는 지도자다. 그래서 박경수를 은퇴시키지 않고, 계속 선수로 활용한다.
올해도 개막전 주전 2루수로 박경수를 사실상 내정했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내보자고 천성호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개막 2연전에 출전시켰는데 이게 웬일, 천성호가 2안타-3안타를 몰아쳤다. 그 다음 두산 베어스와의 3연전에서 3-2-5개의 안타를 쳐버리니 단숨에 붙박이 주전이 됐다. 어떤 지도자라도, 100% 믿음이 안가는 상황에서 그 선수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대체자를 찾았을 것이다. 천성호도 입지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엄청난 집중력으로 이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배정대에 이어 2번 타순에 배치됐는데, 배정대가 골절상으로 빠진 이후에는 1번 자리로 올라섰다. 스타일이 1번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물론 지금도 수비는 불안하다. 지난 주말 롯데 자이언츠와의 부산 원정 도중에도 이 감독과 박경수가 천성호의 수비에 대해 한참이나 얘기했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상황에서 천성호 수비를 얘기하는 건 사치다. 수비좀 불안하다고 뺄 것인가. 오히려 이렇게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