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황성빈(27).
상대 투수에겐 여간 껄끄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다. 타석에선 타격, 번트 가릴 것 없이 생존 본능을 뿜어내고, 진루하면 갖가지 모션으로 신경을 건드린다. 투수를 긁어야 살아 남는 타자의 숙명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는 타자. 그러나 보기에 따라선 화를 돋우고, 소위 '매를 부르는 스타일'로 여겨질 만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대투수' 양현종(36·KIA 타이거즈)도 신경전을 피하지 못했다.
26일 롯데전. 0-0 동점이던 5회초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타석에 선 황성빈은 좌중간 안타를 치고 첫 출루에 성공햇다. 오른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현한 황성빈. 양현종은 다음 타자 고승민과의 승부에 나섰다.
그런데 황성빈의 생존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리드에 나선 황성빈은 자신을 응시하는 양현종에게 보란 듯 오른다리를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1B1S에서 3구째를 던지려 투구 준비 자세에 들어간 양현종이 1루를 다시 응시한 가운데, 황성빈의 '다리춤'은 계속 이어졌다. 양현종은 심기가 불편해진 듯 정면을 응시한 채 미동하지 않았고, 결국 포수 김태군이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에 올랐다. 고승민의 유격수 땅볼 때 황성빈이 2루 포스 아웃되면서 상황 종료. 양현종은 6회초 승계주자 실점으로 패전 위기에 몰렸으나, KIA는 6회말 최형우의 동점포에 이어 8회말 터진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결승타에 힘입어 2대1 역전승에 성공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양현종은 5회초 장면을 두고 "순간 의식도 되고 조금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황성빈은 투수를 괴롭히는 유형의 선수다. 그 선수의 임무일 뿐"이라며 "사람인지라 표정에서 조금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도 그렇고 재작년에도 그랬지만, 롯데 선수들에게 들어보면 황성빈은 그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다. 그 선수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최대한 동요되지 않기 위해 나 역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TV중계에 나선 이대형 해설위원은 "주자가 대개 저렇게 다리를 움직이는 건 뛰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말 뛸 선수라면 저렇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즌 첫 맞대결에서 황성빈이 남긴 강렬한 인상, 과연 양현종은 이후 맞대결에서 어떻게 대응할까.
광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