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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고령 오빠'라 놀려도 '1등'" 33세333일, 비로소 '태극마크 상처' 이야기 한 주민규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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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상처가 컸다. 하지만 그는 '상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소속팀에서 집중하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이었다.

2021년 22골, 2022년 17골, 2023년 17골, 세 시즌 K리그1에서 무려 56골을 터트렸다. 2021년과 2023년에는 K리그1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태극마크는 '미지의 세계'였다. 세상이 돌고, 또 돌았다.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의 A대표팀 시대가 저물었다.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가 열렸다.

1990년생 주민규(울산)가 드디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33세 333일인 11일 A대표로 발탁됐다. 최고령 국가대표팀 승선이라는 새 기록을 작성했다. 주민규는 마침내 그동안 품었던 속내를 드러냈다. 울산 HD는 12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 2차전에서 '현대가 라이벌' 전북을 1대0으로 제압했다. 1차전에서 천신만고 끝에 1대1로 비긴 울산은 합계 2대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그는 전날 "기쁘지만 오늘 소식과 무관하게 내일 경기를 잘 치르겠다"고 말했다. 전북전에서 고지를 넘은 후 비로소 미소지었다. "중요한 경기가 있어서 말을 아꼈는데 이겨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다. 정말 오래 걸렸는데 이제와서 솔직히 이야기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가져가야 되나 생각도 많았다. 그렇게 매 시즌 준비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다 보니 결실을 봐 정말 기쁘다.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뿌듯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 꺼냈다. 그는 "가족들이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았다. 나에게 이야기는 안했지만 나는 한두번의 경험이 아니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기 자식이 최고라 생각하고, 아내도 남편이 최고라 생각한다"며 "왜 안될까는 상처였다. 굉장히 미안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해 하루, 하루를 버텼다. 버티다보니 좋은 날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이어 "와이프가 '고령 오빠'라고 놀리면서도 '어쨌든 1등이지 않냐'고 해줘서 기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며 "더 젊을 때 대표팀에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그땐 내가 부족해 들어가지 못했다. 이 나이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포기하지 않으니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축구선수들도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불을 밝혔다.

주민규는 2013년 2부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주 포지션도 미드필더였지만 2부에서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변경했다. 상무 시절 1부를 경험했지만 원소속은 2부였다. 2019년 시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만년 2위' 울산 HD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다. 28경기에 출전해 5골-5도움에 그쳤다. 2019년 1부 무대를 밟았지만 이듬해 또 다시 2부행을 선택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황 감독은 주민규에 대해 "축구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득점력은 다른 영역이다. 3년간 리그에서 50골 이상 넣은 선수는 전무하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민규는 "그동안 어떻게 더 해야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나 '현타'가 오기도 하고 실망도 많이 해서 자신감도 떨어졌는데, 감독님의 말씀을 기사로 보고 인정받아 무척 기뻤다"며 "황 감독님이 현역 시절 굉장히 많은 골을 넣었는데 그 스킬을 이번 기회에 배우고 싶다. 감독님에게 노하우 등 많은 것을 물어볼 생각"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다시 나이를 지웠다. 두 살 후배인 '캡틴' 손흥민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선수인 손흥민 선수에게도 배울 게 많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좀 붙어 다니며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웃었다. 그리고 "대표팀 막내라고 생각하고 머리 쳐박고 정말 간절하게 뛸 생각이다"고 다짐했다.

홍명보 울산 감독은 "주민규의 대표팀 발탁이 꽤 늦었다. 좀 더 일찍 갔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계속해서 고배를 마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며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늦은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것은 영광이다. 아직까지 얘기하진 않았지만 편안하게 하고 돌아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울산 문수에 내걸린 플래카드다. 주민규의 아름다운 오늘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