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진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진 않다."
2021년 7월 27일. 도쿄 아카사카 사격장에서 펼쳐진 도쿄올림픽 10m 공기권총 혼성전 결선행에 실패한 뒤 '사격황제' 진종오(44)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황제는 총을 내려놓는 쪽을 택했다. 진종오는 3일 서울 성수동에서 가진 은퇴 기자회견에서 "도쿄올림픽을 마친 뒤 은퇴에 대해 생각했다. 경기를 하면서 '더 이상 내가 자리를 차지하면 안되겠다, 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회를 마친 뒤 이에 대한 소회를 정리한 메모를 스스로 남기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은퇴'에 선을 그은 이유에 대해서는 "올림픽 준비나 경기 과정에서 다음 대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이라고 하는 건 스스로 부담감을 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마음은 일찌감치 내려놓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진종오라는 이름 석 자. 한국 사격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2004년 아테네 대회를 시작으로 2008 베이징, 2012 런던, 2016 리우에 이어 도쿄 대회까지 5번의 올림픽에 나섰다. 사격 50m 권총에서 개인 종목 최초의 올림픽 3연패 달성, 최다 메달 보유(금4, 은2) 기록을 세운 사격 레전드다. 도쿄 대회를 마친 뒤엔 서울시청 플레잉코치 역할 뿐만 아니라 2024 강원유스올림픽 조직위원장 등 활발한 행보를 펼쳤다.
최고의 자리. 오르는 거 만큼 지키기 어려운 고독한 일이었다. 진종오는 "매년 목표를 세울 때마다 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지인과 만남, 식사 자리 등 모든 걸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가장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묻는 질문에 "2012 런던 대회가 가장 자신감을 갖고 즐기면서 치른 대회라 기억에 남는다. 모든 면에서 뿌듯했던 대회다. 2018 세계선수권도 기억에 남는다. 도쿄 대회 땐 무슨 정신으로 경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인생 최고의 한 발'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런던 대회 10m 결선 마지막 한 발이었던 것 같다. 10.8점을 맞혔는데, 쏘는 순간 무조건 정중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미소 지었다.
사로(射路)를 떠나는 진종오. 인생 후반전의 출발점에 섰다. 진종오는 "어릴 땐 나밖에 몰랐던 것 같다. '어떻게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느냐'는 물음에 상투적인 답을 내놓았던 것 같다.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가지 못한 게 미련이 남는다"며 "기회가 닿는다면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래 세대들이 더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꿈도 드러냈다.
진종오는 "오랜 기간 사랑 받으며 좋아하는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숱한 성공, 실패를 해봤지만, 모두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지금껏 받아온 사랑을 국민 모두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진종오가 되고 싶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한편, 진종오는 최근 거론되고 있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출마설에 대한 질문에 "오늘은 '선수 진종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춰주시기 바란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성수동=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