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이번에도 '축구'는 뒷전이었다.
정해성 체제로 전환한 전력강화위원회가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첫 미팅을 가졌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정 위원장은 차기 감독에 대한 힌트를 공개했다. 임시와 정식 감독, 국내와 외국인 감독, 현직과 야인 감독, 모든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무게추는 정식 국내파 감독으로 기울고 있다. 정 위원장은 "정식 감독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임시로 꾸리기에는 여러 난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논의 상황에 따라 임시 체제로 갈 수도 있다"고, "시기적으로 3월 예선 두 경기를 준비하는데 있어 국내 감독에 비중을 둬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시기적으로 촉박한 가운데 현직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선정된다면,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을 해야할 것 같다"며 현직 감독도 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총 8가지의 기준을 공개했다. 게임 플랜을 짜고 실행할 수 있는 '전술', 취약 포지션을 해결하는 '육성', 지도자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명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력', 선수단-협회와 논의할 수 있는 '소통', 관리형인지, 동기부여형인지 등 '리더십', 코칭스태프를 어떻게 꾸릴 수 있는지 '인적시스템',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성적' 등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사실 대부분 감독들을 평가하는 덕목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어떤 것이 더 우선시 될지는 향후 논의를 통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 앞서 지적하고 싶은게 있다. 정 위원장의 브리핑에는 여전히 '누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중요한,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5년 전으로 시계를 다시 한번 돌려보자.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한국축구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새로운 감독을 찾아나섰다. 감독 찾기의 첫 발은 '철학'의 정립이었다.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부터 정했고, 이는 '능동적인 축구'였다. 이름값은 상관없었다. 최우선은 '능동적인 축구에 부합하느냐'였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었다. 이후 스토리는 우리가 아는데로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를 위한 어떤 논의도 없었고, 그 논의를 할 생각도 없었다. 어떤 축구를 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감독을 뽑을리 만무했다. 우리 철학이 없으니 '어떤'이 아니라 '누가'가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기준'이 아무리 거창한 들, 달라질게 없었다. 그저 선임이 목적이었으니, 철학도 중요치 않았고, 논의도 필요없었다.
정 위원장은 독립적으로 감독을 뽑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은 잘 모른다. 언론을 통해서만 접했다. 전력강화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전력강화위원들을 모실 때 절대 이번 선임에서는 거수기가 되거나 압력에 의해서 되는 것은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책임감을 느끼고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위원들도 정 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독립성에 대한 약속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강화위가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이제 절차가 중요하다. 시간이 없기는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누구에 앞서,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는게 우선이다. 그래야 클린스만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능동적인 축구든, 수동적인 축구든 2026년 북중미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축구의 색깔을 먼저 정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차기 감독에 대한 길도 보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