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결국은 또 선수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었다.
카타르 아시안컵 대회 때도, 어이없는 '탁구게이트'가 터져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영웅들은 '스스로' 힘을 다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또 '스스로' 온 정성을 다해 무너질 뻔한 대표팀의 위계질서와 팀워크를 수습해냈다.
정작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됐어야 할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나 대한축구협회(KFA)는 이 과정에서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한국 축구사상 최악의 감독'인 클린스만은 대회 기간 내내 실실 웃는 얼굴로 선수들이 알아서 뛰는 '해줘~축구'를 펼쳤고, KFA는 선수단 내의 다툼이 외부에 공개되고, 인신공격 수준으로 비화돼 결국 사분오열로 접어드는 파국의 흐름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과적으로 클린스만이나 협회가 각자의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까닭에 한국 축구는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됐다.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허망하게 패했고, 패배의 원흉인 클린스만은 귀국하자마자 제대로 된 대회 결과 분석과 평가도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야반도주'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후 손흥민과 이강인 등이 요르단과의 4강전 전날 저녁 서로 다퉜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왔다. 저녁 식사 시간에 선수단 단합 모입을 주도하려던 손흥민과 탁구를 치러가려던 이강인 등 일부 어린 선수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져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쳤다는 내용이다.
원래 대표팀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표팀 내에서 규정에 따라 수습하고 처리해야 된다. 그러나 이 역할을 해야 할 클린스만은 선수들의 다툼을 방치했고, 그 다음으로 이 일의 수습에 나서야 할 협회는 오히려 외부에 이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선수들을 사실상 '화살받이'로 세우고 말았다. 여론은 급속도로 냉각됐고, '하극상', '편가르기'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등장해 '한국 축구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팀 선수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손흥민과 이강인 모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협회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수수방관했다. 애초 외신 보도가 나온 뒤 몇 차례나 이 사안을 원만하게 수습할 기회는 있었다. 대표팀 내에서 벌어진 갈등과 다툼의 본질을 파악한 뒤 진상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 생긴 불협화음을 조절해 다시 원팀으로 만드는 일, 나아가 태극마크에 대한 선수들의 자부심과 국민들의 애정을 회복시키는 일 등 부지런히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협회는 클린스만 경질 발표와 새 감독 선임을 위한 전력강화위원회 구성 및 정해성 위원장 선임 등 현안을 처리하면서 곤경에 빠진 대표팀 선수들의 사정은 돌보지 않았다. 사실상 외면한 것으로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알아서 서로 갈등을 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흡사 이런 모습은 선수들에게 '해줘~'로 일관했던 클린스만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손흥민과 이강인, '한국축구의 보물'들은 스스로 최적의 해법을 찾아냈다. 이강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대표팀 캡틴 손흥민을 만나 진솔한 사과를 했다. 또 대표팀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오해를 풀려는 노력을 했다. 위대한 용기다.
뿐만 아니다. 손흥민은 이런 이강인을 따스하게 품어주면서 스스로 '보호막'이 되어줬다. 손흥민은 자신의 SNS를 통해 "강인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비롯한 대표팀 모든 선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저도 어릴 때 실수도 많이 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도 있다"면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특별히 보살펴 주겠다"며 이강인의 후견인 역할을 자청했다. 이어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 드린다"며 성난 대중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이런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대표팀에 발생했던 '내분사태'는 일단락될 전망이다. 당사자들이 서로 사과와 용서를 주고 받았고, '캡틴'이 앞장서서 대중에게 이해와 용서를 부탁한 만큼 더 이상의 잡음이 나올 리 없다. 나와서도 안된다. 협회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선수들이 만들어낸 최적의 결과물이다. 어쩌면 협회가 원하는 그림이었을 수도 있다. 골치 아프게 개입하지 않고도 선수들끼리 일을 해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야 할 일을 자꾸 하지 않는다면, 대한축구협회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시시각각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