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대한민국-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눈길을 끄는 장면 중 하나는 '전직 막내형' 이강인(23·파리생제르맹)이 팀 동료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이강인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와 카타르아시안컵 16강전에서 연장전반 13분, 두 살 위인 미드필더 홍현석(25·헨트)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상황은 이렇다. 교체투입된 홍현석이 하프라인 좌측 부근에서 전방을 향해 전진패스를 시도했다. 부정확한 패스가 사우드 압델하미드에게 전달됐다. 압델하미드가 공을 잡자마자 빠르게 한국 진영 쪽으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위험을 감지한 이강인은 뒤에서 압델하미드 유니폼을 잡으며 상대의 역습을 차단했다.
주심이 다가와 이강인에게 옐로카드를 내밀었다. 이강인은 주심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경고를 감수하고 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파울을 당한 압델하미드가 이강인에게 불쾌한 감정을 표출했지만, 이강인의 시선은 주심도, 압델하미드가 아닌 홍현석에게 꽂혀있었다. 이강인은 큰 목소리로 홍현석에게 호통을 쳤다.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 9분 조규성(미트윌란)의 '극장 동점골'로 간신히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린 상황이었다. 조별리그 3차전 말레이
시아전에서 역습을 허용하며 '굴욕의 동점골'을 내준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는 이강인은 고의 파울로 상대 공격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강인은 2019년 폴란드 U-20월드컵에서도 한 두 살 위인 형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호통을 치고 지시를 내리는 모습으로 '막내형'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선 이강인보다 어린 선수(김지수 양현준)들이 있어 '막내' 타이틀을 뗐지만, 여전히 그때 그 막내형의 본능은 유지하고 있다.
이강인은 입으로만 동료들에게 집중하라고 호통친 것은 아니다. 이강인은 120분 동안 교체없이 누구보다 왕성하게 온 그라운드를 누볐다. 절묘한 중거리 슛이 상대 골키퍼에게 막힌 뒤 머리를 감싸쥐지 않았다. 다음 공격을 하기 위해 곧바로 코너 플랫 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날 경기에서 이강인은 결승골을 넣거나,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하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킥을 담당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 경기에서 막내였던 이강인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었기에, 한국은 승부차기 끝에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다. 이러한 승리욕은 64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